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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봉인 해제’된 천안함, 무엇이 진실인가

등록 2010-10-20 17:56수정 2010-10-20 18:13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한겨레출판·1만2천원
20개의 키워드로 천안함 사건 파헤쳐
21일부터 매일 키워드 하나씩 소개
‘천안함 의혹’을 총정리한 서적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이 출간됐다. 한겨레 기자들과 시민단체·군사전문지·언론전문지 기자와 활동가들이 ‘가려져 있는 천안함의 진실’을 찾기 위해 천안함 최종보고서 발표 뒤에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혹들을 정리했다.

국방부가 지난 9월13일 펴낸 최종보고서는 2010년 3월26일 밤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형잠수정이 발사한 중어뢰가 수중폭발을 일으켜 천안함을 격침시킨 사건”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최종보고서엔 국방부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최종보고서는 중어뢰를 쐈다는 ‘북한의 소형잠수정’이 어떤 것인지 특정하지 못했으며, 그 중어뢰의 폭발력(티엔티 환산 때 350~500kg)과 사건 당일 발생한 지진파의 폭발력(리히터 규모 1.5로 티엔티 환산 때 140~260kg)의 모순도 해명하지 못했다. 더욱이 수중폭발 때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높이 100m 이상의 물기둥과 관련한 증언에서는 ‘조작’ 냄새마저 풍긴다. 물기둥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증언을 마치 물기둥을 본 것처럼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최종보고서는 이밖에도 갖가지 모순으로 가득하다. 천안함을 두쪽 낼 정도의 어뢰가 터졌다면, 승조원들이 “총알처럼 튕겨나간다”는 민군 합동조사단 자문위원의 증언이 있는데도 최종보고서는 ‘뫼르쇠’다. 폭발은 천안함의 왼쪽에서 일어났는데, 스크루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 휜 데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선체에 붙은 흡착물은 폭발물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은 국방부가 주장하는 사고시각보다 짧게는 4분 가까이 일찍 끊겼다.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북한 어뢰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은 녹슨 어뢰추진체는 더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합조단이 이 어뢰 추진체의 것이라며 5월20일 발표한 실물 설계도가 가짜임이 밝혀져 국민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겨레>가 특종보도한 러시아 천안함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단은 이 추진체가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2개월 물속에 있었다고 판단한 국방부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다시 살펴봐도 국방부가 펴낸 천안함 최종보고서엔 “북한이 했다”는 주장은 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은 지극히 빈약하다. 달리 표현하면, 국방부는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공격당해 침몰했다는 가설을 내놓았으나 최종보고서에서도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셈이다. 한마디로 천안함과 관련한 진실은 여전히 ‘봉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가설 단계의 ‘북한 어뢰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대내외 정책들을 펴나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북풍몰이’를 해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이외의 경협을 전면 중단시켰다. 또 미국과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는 등 확연한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펴나간다. 이런 모습에 중국은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산둥반도에서 대규모 맞대응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남한 대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각종 인허가를 늦추고 있는 현상이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 정부의 이런 편향된 외교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천안함이 한반도의 안정을 급격하게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놓고 한반도 주변국들이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탓이 크다. 심지어 지난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한 국민들도 32.5%만이 정부의 ‘북한 어뢰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다.


이런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지난 9월29일 유엔 총회에 참석중인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미국과 남한이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을 이용한 군사적 위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부상은 또 “남조선 당국은 사건 진상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을 위하여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제기한 검열단의 현지 파견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천안함 사건에 대한 검열단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 등 정책 변화를 ‘북한의 천안함 공격 사과’와 연계시키고 있다. 천안함과 관련해서 둘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갈등이 심화됐을 때 중재에 이르기가 어렵다. 한반도 정세가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구도로 짜이고 있는 속에서 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천안함 해석에 빚대어 정당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천안함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의 행보를 이런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중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이익을 바라는 마음들을 천안함의 봉인에 기대어 숨기는 이런 구조에서 분쟁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이 책의 기획의도 중 하나는 천안함의 ‘진실’을 확인하는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천안함과 관련한 인식의 간극을 줄이고 그것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제거·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우선 1부에서는 지난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의 국내외 흐름을 <한겨레> 기사를 토대로 쭉 살펴보았다. 1부 기사를 통해,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 그리고 남한 내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천안함과 관련한 활동주체들이 어떻게 움직여왔고, 또 어떤 입장 변화가 있었는지 큰 틀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에서는 국방부가 발표한 천안함 최종보고서의 모순들을 본격적으로 집중 해부한다. 남한 정부가 ‘북한 어뢰설’ 등 아직까지 가설에 불과한 주장을 진실로 통용시키고자 하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짚어보았다. 제3부에서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큰 의혹의 중심에서 취재활동을 해온 필자들의 취재기를 담았다.

한겨레 e-뉴스부에서는 앞으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에서 다루고 있는 20개의 키워드를 하나씩 요약 소개할 예정이다. 갖가지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하나의 길잡이가 될 것을 기대한다. /한겨레출판·1만2천원.

김보근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장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목차

책을 펴내며: 냄새가 난다, 봉인을 풀자

1부 사건의 개요

근거가 실종된 시간들 2010. 3. 26 - 10. 12

2부 20개의 키워드로 읽는 천안함 사건

폭발 논란

01. 충격파 100G: 어뢰 파격이면 승조원 총알처럼 날아가

02. 스크루 휨 현상: 폭발은 왼쪽인데 왜 오른쪽이 엿가락?

03. 흡착물: 그 모래와 소금, 폭발과 무관

시간, 장소 논란

04. 시시티브이: 카메라는 왜 9시17분에 멈추었나

05. 엇갈리는 장소: 지진파, 초병 진술, KNTDS 항적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북한 관련

06. 연어급 잠수정: ‘깜짝’ 등장했다 ‘슬그머니’ 사라지다

07. CHT-02D: 정보기관의 무능력, 북한의 ‘유령 군사력’ 만들다

08. ‘1번’ 글씨: 유성펜의 미스터리, 과학자여 논쟁하자

09. 지진파: ‘폭발력 260kg‘은 수심과 ‘따로’ 놀아

보고서 왜곡

10. 왜곡된 보고서: 설계도 실수 숨기고 충격파는 교묘히 속이고

여러 가지 가설들

11. 어뢰설: 007 같은 인간 어뢰설까지 보수 언론, 청와대, 경호처 공명

12. 좌초설: “난 좌파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좌초다”

13. 기뢰설: 136개의 ‘서해 크라이시스’는 어디에

천안함과 한반도

14. 국제사회: 한발 빼는 스웨덴, 미국 빼곤 구색 맞추기

15. 미국: 최대의 수혜자 또 어떤 청구서를?

16. 동북아: 신냉전 구도 ‘한·미·일’ 대 ‘북·중·러’

17. 남북 경제관계: 정권 이익을 위해 바친 민족 미래의 비전

천안함과 한국사회

18. 정치: 정보 접근도, 과학자 조직도 못한 국회

19. 사회: “한 방에 갈 수 있어” 공포체제의 부활

20. 언론: 인터뷰 논객과 누리꾼에게 부끄럽다

3부 천안함 취재기 및 사건 일지

○ 한겨레21 취재기: 승조원들 표정이 단서, “혹시 사고가 아닐까?”

○ 백령도 ‘침선’ 취재기: 정체불명의 침몰 선박, 왜 군은 끝까지 은폐했나

○ 하니TV 다큐 제작기: 팩트 찾아 60일, 25분 영상에 담다

○ 러시아 천안함 보고서 요약본

○ 천안함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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