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로 쓴 해방공간의 역사
〈역사 앞에서〉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 김구 선생의 말이다. 개인의 체험이 곧 역사다. 개인사들이 모여 거대한 한 시대의 벽화가 탄생한다. 그 개인이 역사학자라면 벽화는 더 정밀하다. 역사학자 김성칠은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기까지 격변의 현대사를 일기로 남겼다. 일기는 사초다. 사람 하나하나, 정황 하나하나 묘사가 딱 떨어진다. 산골에서 인민위원회 선거가 열렸다. 인민군은 괴나리봇짐에 소총 한 자루 삽 한 자루 들었다. 마을 한가운데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서울이 폐허로 변했다. 관념으로만 알던 한국전쟁의 사회사가 연속장면으로 펼쳐진다. 그는 1951년 괴한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
김성칠이 간 길이 오늘 우리에게 이정표가 된다. 1940~1950년대의 이념투쟁과 편가르기의 슬픈 자화상은 2009년에도 반복되기 때문이다. “신문기사의 허위보도라고 하면 어떤 사실을 날조한 경우에 한하지 않고, 어떤 사건의 연속 중에서 일부분을 고의로 묵살해버린다거나 그와 반대로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은 허위보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1946년 4월22일) 지금의 친정부 보수언론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의 마음가짐도 본받을 만하다.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밖에 내지 말 일.”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1950년 1월1일) 이 책은 1993년에 처음 나왔다. 다시 펴내면서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인 정병준 교수가 긴 해제를 붙였다. 김성칠 지음·정병준 해제/창비·1만6000원.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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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잔재여…고향의 아름다움이여
〈한국의 간이역〉
새벽 안개 속의 아스라한 낭만적 정경. 또는 약탈로 얼룩진 식민지 치욕의 증거물. 간이역에는 양극단의 감정이 충돌한다. 전자가 잡지 화보를 보듯 얇은 표피를 스치는 감상이라면 후자는 눈에 보이는 건물 너머 스토리에 대한 집착으로 만들어진 태도다.
건축비평가 임석재 교수(이화여대)는 ‘회색분자’를 자처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간이역의 앞과 뒤를 꼼꼼히 뒤져가면서 이 양가적 감정의 실체는 어디로부터 기원하는가를 추적해 나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인 익산의 춘포역은 이후 간이역의 표준설계를 완성했다. 언뜻 보면 그 단순함이 시골의 농협 창고 같지만 임 교수는 이 건물의 수직비례에 주목한다. 나지막한 단층의 수평성이 특징인 한국 전통 건물과 달리 춘포역은 “껑충한 비례로 주변 논을 굽어보고 있다.” 식민상황에 대입해 보면 한국의 “농촌지역을 제압하려는 목적”이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거대한 쇼핑몰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신촌역은 그 옹색해진 위용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항시적 미학을 획득한 듯 그 한 구석에서 훨씬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차라리 잘되었다. 천박한 부동산 투기건물이 밀고 들어왔기에 신촌역의 심미성이 돋보인다”고 평한다. 다만 “통일 후를 대비하는 경의선의 주요 거점 지역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단견에 아쉬움을 표한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21개 간이역 가운데 16개 간이역을 찾아갔으며 작은 역의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 자료도 충실하다. /인물과사상사·1만7000원.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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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숨 쉴 곳이 필요해
〈지구 위의 작업실〉
‘줄라이홀’. 시인이자 프리랜서 방송인인 김갑수씨가 서울 마포 어느 작은 아파트 단지 뒷길 상가 건물 지하에 마련한 ‘작업실’ 이름이다. 음악광인 김갑수씨는 ‘좋은 음’을 보장해줄 천장 높이 3m의 이 지하공간을 발견하기 위해 마포의 허름한 골목들을 수없이 ‘수색’했다. 창문조차 책장으로 가려져 빛이 완전 차단되고, 음향분산재 설치를 위해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조차 제거된 뒤 ‘특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김갑수씨는 이 별난 공간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지구 위의 작업실>에 담았다.
그에게 작업실이란 “그 자신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지은이는 “누구에게나 15살 이전까지는 이 세상이 작업실”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그런 자기만의 공간을 잃어버린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가 잘 그리고 있듯 현대 자본주의는 모든 이에게 ‘반복’과 ‘동일시’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형화된 생활을 잘도 참아내지만, 몇몇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때로는 과감히 체제 밖으로 탈주하기도 하고, 스스로 정신분열을 겪기도 한다. 김갑수씨의 대응은 “숨 쉴 작은 공간”을 찾는 것이다. ‘줄라이홀’은 20대부터 줄곧 광화문 등 여러 ‘작업실’을 전전하던 지은이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3~4일을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곳, 3만장의 엘피판과 4천장의 시디가 다양한 음악소리를 만들어내는 곳, 일주일치씩 새로 볶는 커피 원두 냄새가 진동하는 곳. 그의 말대로 그곳은 ‘탈주’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로망이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푸른숲/1만3000원. 김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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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책읽기로 인생 바꿔볼까?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스물아홉 살 장혁종씨. 회원이 수천 명인 온라인 독서클럽을 운영하며 하루 두 시간 반 규칙적으로 책을 읽는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애를 통틀어 읽은 책이라곤 다섯 권뿐이었다고 한다. 그가 책에 빠지기 시작한 건 군대 운전병 때였다. 에너지 넘치는 활동가 타입이었던 탓에 대기 시간이 못견디게 괴로웠다. 그렇게 책읽기밖에 할 게 없어 시작한 독서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이 생겼고 선택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자신을 ‘알찬’ 사람으로 봐주는 주변사람들 시선은 덤.
책읽기는 우리 인생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내 인생의 책’을 꼽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말하는 잘난 사람들 얘기가 과연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을까.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책읽기는 가장 손쉽고 저렴하고 효과적인 자기계발법이며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말한다. 서른 즈음에 본격적으로 책과 사귀기 시작해 “결혼이나 취업보다 나를 크게 변화시킨 것이 바로 책”이라고 말하는 <한겨레> 구본준 기자와 ‘1년에 50권’ 목표를 번번이 허물어뜨렸으나 다시 책읽기를 배우러 나선 김미영 기자가 평범한 직장인 ‘책의 고수’부터 책으로 석학이 된 이어령 교수까지 책쟁이 수십명을 만나서 들은 책읽기 비법을 풀어놨다. 책 읽을 시간은 어떻게 내는지, 책은 어떻게 고르는지,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등 사소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부터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까지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한다. /위즈덤하우스·1만2000원. 김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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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궂은일 가리지 않던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오토바이〉
아버지의 부음. 등졌던 아들이 장례식차 시골로 간다. 사흘장이 치러지는 동안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풀린다. 이와 함께 아버지의 과거와 진면모가 드러난다.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흔하지만 튼튼한 구조다. 사건이 뺑소니였고 아비가 공사판 인부였던 까닭에 담당 형사와 늙은 공사장 동료가 번갈아 등장해 아버지의 조각난 과거를 맞춰준다. 아버지는 독종이었다. 술을 사지도, 얻어 마시지도 않는 노랭이며 기술을 배우려고 10살 연하한테 굽실거리는 인물. 공사장 함바식당 여주인과 정분이 나 동업을 하다가 결국 식당을 꿰찬다. 그는 노름판을 열어 남의 논밭을 가로채고 아가씨를 고용해 2차영업을 했으며 성상납으로써 경찰을 한통속으로 끌어들인다.
“아버지 된 자의 손은 궂은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비의 손과 궂은일을 하는 손은 별개가 아니다. 너도 아버지가 되었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칭찬이나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아들의 득남 때 보낸 축하편지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들은 독하지도, 굽실거리지도 못한 탓에 대기업 부장에서 밀려난 인물. 장례 뒤 아들은 시설에 수용된 정신지체 형을 방문하고 아버지에 이어 형을 돌볼 것을 약속한다. 우리 시대 아버지란 무엇인가. 작가가 던지는 화두다. 조두진 지음/예담·1만원.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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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으로 낳는 아이, 입양의 모든 것
〈입양아 부모 되기〉
차인표-신애라, 윤석화, 앙드레 김, 조영남, 엄용수…. 이들의 공통점은? ‘남의 피붙이’를 ‘내 아이’로 키워낸 입양 부모들이다. 입양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한다. 혈통을 유달리 중시하는 한국인의 보수성은 한국전쟁 이후 수십년 동안 ‘고아 수출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인기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당당한 공개입양 선언과 사회적 캠페인, 문화적 다양성 확대 등에 힘입어,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1998년 이후로 국외입양이 계속 감소세고, 2007년에는 국내입양이 국외입양을 앞질렀다. 여러 이유로 입양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늘고 있다.
그러나 한 생명을 ‘가슴으로 낳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입양아 부모 되기>는 입양을 결심한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서부터, 유대와 애착, 칭찬과 꾸중, 주변과의 관계, 아이의 심리적 갈등과 정체성, 친생부모와의 접촉, 입양절차 문제, 심지어 충격과 상처를 최소화하는 파양 방법까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풀어가는 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와 도움말을 제공한다. 지은이 로이스 멜리나는 한국에서 두 아이를 입양해 키웠고, 입양가정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미국의 입양전문가다. 책은 1부 입양부모 되기, 2부 입양가정 가꾸기, 3부 입양을 둘러싼 특수한 문제와 해결법까지 3부로 짜였다.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과 시행착오, 사회복지 이론과 수많은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입양에 대한 폭넓고 세심한 멘토를 자임한다. 로이스 멜리나 지음·이수연 옮김/궁리·1만5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