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이라크전 비용 충격적 전모
〈오바마의 과제-3조 달러의 행방〉
이라크전은 미국을 쇠락의 길로 몰고간 전쟁, 세계를 불행하게 만든 전쟁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린다 빌메스 하버드대 교수는 정부의 자료들과 귀환 군인들의 증언 등을 꼼꼼히 분석해 이라크전의 ‘진정한’ 비용을 계산해냈다. 그들이 찾아낸 이라크전 전비는 최소 3조달러(약 3800조원)다. 아프리카 빈곤을 해결하고 미국의 사회안전망도 확충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 헛되이 날아갔다.
전쟁 전 부시 행정부는 1000억~2000억 달러면 충분하다고 큰소리쳤지만, 정부가 밝힌 공식 전비만 이미 8천억 달러를 넘었다. 은폐된 비용들은 더 천문학적이다. 병력 부족을 겪는 미군은 민간경비회사의 ‘용병’들을 정규군의 10배 가까운 돈을 주고 고용해 전쟁터로 보냈다. 4000넘는 미군 사망자와 7만여 부상군인들을 위한 보상금, 의료급여, 연금은 미국 사회에 장기 부채로 남는다. 미국인들은 정부가 빌려쓴 엄청난 전쟁 자금과 그 이자를 수십 년 동안 갚아야 한다. 국제사회도 막대한 비용을 떠안았다. 이라크전으로 국제유가가 급상승했다. “고유가가 유럽·일본·한국 등 미국 동맹 선진국들에 부담시킨 총 비용은 1조100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잘못된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으로 인한 경기침체 압박을 줄이려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해 부동산 거품과 소비붐을 야기했다. 이 “미친” 전쟁에서 “미국의 석유·가스산업과 군수산업, 민간경비업체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했다.” 서정민 옮김/전략과문화·1만8000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김민수 교수의 한국도시 속살 탐사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부산과 광주, 대구, 울산과 같은 한국 도시들도 불과 100년 전에는 유럽의 역사적 도시들처럼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유서 깊은 성곽도시들은 일제의 지배를 거치면서 ‘양식’ ‘왜식’으로, 1950년 내전의 폐허를 거쳐 60~80년대 개발 시대엔 ‘근대화’ 도시로 탈을 바꿨다. 그 뒤엔 아파트가 모든 대도시를 장악했으며, 신도심·신도시 개발로 오랜 도심은 버려졌다. 1000~2000년 이어온 도시 구조나 건축의 전통은 100년 만에 두세 차례나 성형됐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더하고 다듬은 김민수 서울대 교수의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는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6대 도시들을 발로 찾아다닌 결과다. 탐사의 대상은 디자인만이 아니고, 삼국 이후의 역사, 지역 문화, 공간 구조, 자연 환경, 산업 등 도시를 둘러싼 모든 중점들을 아우른다. 다산에게 유배 시절이 없었더라면 거질의 저작들을 남길 수 없었을 것처럼, 그에게 6년의 해직(유배) 시절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도 절실하다. 그는 6개 도시의 지층을 파헤침으로써 이 도시들에 정체성을 부여했다. ‘멀티플렉스 부산’ ‘혼합형 미인 대구’ ‘진국의 맛을 위하여, 대전’ ‘무등정신, 광주’ ‘선사와 현대 사이, 울산’ ‘21세기 개항장, 인천’. 외국의 도시들은 후미진 골목까지 꿰면서도 정작 국내의 도시들엔 문외한인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친절하고도 깊이 있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또 한국의 도시들이 본격 탐구의 대상이 됐다는 점도 반갑다. /그린비·3만2000원.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 ‘사실’ 뒷받침 촘스키식 미국 읽기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지난 8년 부시 행정부의 미국에서 촘스키가 주목하는 변화는 미디어의 변화다. 많은 미디어는 부시에게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주류 언론의 도마 위에서 이렇게 혹독하게 난도질을 당한 미국 대통령은 전례가 드물다. 촘스키는 “부시 정부의 입장이 지금까지 주류 사회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편협한 이념 스펙트럼의 극단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게 바로 변화다. 변화는 느리게 오지만 이미 와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퇴보가 거론되는 부시 시절에서 변화의 단서를 발견한 것은 촘스키의 혜안이다. ‘변화’를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의 취임을 앞둔 시점이라 더욱 의미 있다. 2006~2007년 촘스키를 만나 인터뷰 한 라디오 프로듀서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정리한 이 책엔, 변화의 시기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촘스키의 혜안이 담겨 있다.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섭렵한 팩트(사실)로 뒷받침하다보니, 몇 해가 지났는데도 세계를 다루는 미국의 태도에 대한 그의 분석이 외려 생생하다. 이스라엘이 로비와 권력으로 길들인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에 그들만의 질서를 강요하는 모습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침공 이야기다.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을 따르다 경제적 재앙에 맞닥뜨렸던 현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 이야기다. “또 촘스키냐”라는 질문은 이제 던지지 말자. 노엄 촘스키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독자라면, 대화체로 쓰인 이 책이 입문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데이비드 바사미언 지음·장영준 옮김/시대의창·1만45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 ‘뚱보 백수’ 위한 북한산 안내서
〈백수산행기〉 주말 북한산은 도떼기 시장이다. 산이 아니라 앞사람 뒤꿈치를 보아야 한다. 주요 능선은 선이 아니라 4차선 도로다. 전망이 좋아 궁둥이를 붙일 만한 땅이면 으레 시쿰한 냄새가 난다. 뭇사람이 고시레로 흘린 막걸리 냄새가 배고 밴 탓이다. 인간한테 치어 변변한 동물 한 마리 없다. 그런 북한산에 한 뚱보 백수가 홀린 듯이 들어가 살이 쭉 빠진 ‘완소남’으로 변신하고 번듯한 직장까지 얻어 하산했단다. 전설이 사라진 시대에 도사를 만나 무공을 닦았을 리도 없고, 발길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산삼 한뿌리 숨어 있을 리 없는 데서 어떻게 그런 일이? 굳이 답을 하자면 ‘가보면 알아’. 아무리 닳고 닳아도 북한산은 명산이다. 그 많은 인파가 딛고 밟아도 단단한 화강암 바위산이 어디 가겠는가. 봉봉 골골은 언제 가도 거기 있어 아늑한 품을 내준다. 어느 길로 올라도 능선으로 통하고 어느 길로 내려가도 한두 시간, 길어야 서너 시간이면 시내다. 아무리 깊이 숨어들어도 웅웅거리는 도시음이 따라 들어와 길 잃어버릴 염려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 등산처이니 뚱보에다 방향치에다 무한초보도 오를 수 있다. 단, 산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느냐는 본인한테 달렸다. 등산길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들이 알고 보면 도사들이고, 산행으로 고파진 배에 오이 한 개, 김밥 속 우엉 한 조각이 산삼뿌리다. 뚱보 지은이는 그것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가 얻은 것은 가뿐해진 몸이 주는 자신감 외에 번듯한 책 한 권도 있다. 절절한 자기 고백서이니 곧 뚱보 백수를 위한 산행 안내서다. 김서정 지음·지만 그림/부키·1만1000원.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이미지·비유로 ‘과학계 난제’ 설명
〈슈뢰딩거의 고양이〉 나무가 빽빽한 숲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시야는 그 속을 관통하여 뻗어나갈 수 없어야 한다. 수많은 별들로 채워진 우주 공간을 바라볼 때면 밤하늘은 태양처럼 빛나는 별들로 꽉 차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밤하늘은 깜깜하고, 온 우주가 검은색이다. 별들이 끊임없이 멀어져서 미처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가 없어야 이 역설적인 얘기가 완결된다. 우주 팽창설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이를 가리켜 ‘올베르스의 역설’이라 한다. ‘케플러의 난제’는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 곧 아포리즘이다. 지동설을 바탕으로 별들의 운행에 관한 원리를 발견한 케플러가 막상 청중에게 “행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다”라는 천체물리학의 제1법칙을 설명하려 할 때 부닥치는 어려움을 가리킨다. 독일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과학계의 경구를 통해 케플러의 난제들을 해결하려 시도했다. 그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려 “특정한 물음이나 성찰에 대한 명제들을 그것을 최초로 던진 인물과 직접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책의 제목은 양자역학의 선구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반박하려 고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서 따왔다. 피셔는 아인슈타인의 유령, 패러데이의 새장, 멘델의 법칙, 프로이트의 모욕, 오컴의 면도날 등 41개의 명제들을 통해 과학자들이 제기한 물음과 해법을 과학자들이 채택했던 이미지와 비유를 동원해 풀어간다. 그러나 케플러의 난제를 풀어보려는 피셔의 의도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지는 의문이다. 박규호 옮김/들녘·1만5000원.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 기자가 쓴 ‘한국문학 새 지형도’
〈손민호의 문학터치 2.0〉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은 <중앙일보> 손민호(38) 기자의 문학 칼럼을 모태로 삼은 책이다. 신문 기사는 꼭지당 원고지로 8장 분량이었는데, 책으로 바뀌면서 30장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라는 부제에 이 책의 성격이 함축되어 있다. 책은 1970년대생을 중심으로 ‘젊은’ 시인과 소설가 30명을 호출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문학도 변했다”는 믿음 아래 “21세기 한국 문학의 새 지형도를 탐색”해 보겠다는 게 글쓴이의 의도다. 글쓴이 자신이 대상이 되는 작가들과 같은 세대라는 점은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기자가 쓴 글인 만큼 작품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평가보다는 시인·작가들의 인간적 면모와 작품 사이의 상관관계,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문단 안팎의 풍경을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손 기자는 대상 작가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때로는 무모한 주량 겨루기도 마다지 않으며) 그들의 깊은 속내를 끄집어낸다. 기성 문단의 우려와 질책에 일쑤 맨몸으로 노출되곤 하는 또래 작가들은 이 책에서 든든한 응원군을 만나게 된다. 기성 문단의 완고한 관습을 향해 “좃까라 마이싱”이라 일갈하는 소설가 박민규, “내가 좋다는데 왜 지랄이셔”라며 뻗대는 시인 김민정, “시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 의뭉 떠는 시인 황병승 등을 글쓴이는 적극 옹호한다. 새로운 경향에 대한 쏠림이 보이는 가운데, 문태준과 손택수 시인의 고전주의, 김연수 소설의 인문주의 등에 대한 평가도 인색하지 않다. /민음사·1만5000원. 최재봉 기자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부산과 광주, 대구, 울산과 같은 한국 도시들도 불과 100년 전에는 유럽의 역사적 도시들처럼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유서 깊은 성곽도시들은 일제의 지배를 거치면서 ‘양식’ ‘왜식’으로, 1950년 내전의 폐허를 거쳐 60~80년대 개발 시대엔 ‘근대화’ 도시로 탈을 바꿨다. 그 뒤엔 아파트가 모든 대도시를 장악했으며, 신도심·신도시 개발로 오랜 도심은 버려졌다. 1000~2000년 이어온 도시 구조나 건축의 전통은 100년 만에 두세 차례나 성형됐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더하고 다듬은 김민수 서울대 교수의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는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6대 도시들을 발로 찾아다닌 결과다. 탐사의 대상은 디자인만이 아니고, 삼국 이후의 역사, 지역 문화, 공간 구조, 자연 환경, 산업 등 도시를 둘러싼 모든 중점들을 아우른다. 다산에게 유배 시절이 없었더라면 거질의 저작들을 남길 수 없었을 것처럼, 그에게 6년의 해직(유배) 시절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도 절실하다. 그는 6개 도시의 지층을 파헤침으로써 이 도시들에 정체성을 부여했다. ‘멀티플렉스 부산’ ‘혼합형 미인 대구’ ‘진국의 맛을 위하여, 대전’ ‘무등정신, 광주’ ‘선사와 현대 사이, 울산’ ‘21세기 개항장, 인천’. 외국의 도시들은 후미진 골목까지 꿰면서도 정작 국내의 도시들엔 문외한인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친절하고도 깊이 있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또 한국의 도시들이 본격 탐구의 대상이 됐다는 점도 반갑다. /그린비·3만2000원.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 ‘사실’ 뒷받침 촘스키식 미국 읽기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지난 8년 부시 행정부의 미국에서 촘스키가 주목하는 변화는 미디어의 변화다. 많은 미디어는 부시에게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주류 언론의 도마 위에서 이렇게 혹독하게 난도질을 당한 미국 대통령은 전례가 드물다. 촘스키는 “부시 정부의 입장이 지금까지 주류 사회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편협한 이념 스펙트럼의 극단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게 바로 변화다. 변화는 느리게 오지만 이미 와 있다”고 말한다. 역사적 퇴보가 거론되는 부시 시절에서 변화의 단서를 발견한 것은 촘스키의 혜안이다. ‘변화’를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의 취임을 앞둔 시점이라 더욱 의미 있다. 2006~2007년 촘스키를 만나 인터뷰 한 라디오 프로듀서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정리한 이 책엔, 변화의 시기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촘스키의 혜안이 담겨 있다.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섭렵한 팩트(사실)로 뒷받침하다보니, 몇 해가 지났는데도 세계를 다루는 미국의 태도에 대한 그의 분석이 외려 생생하다. 이스라엘이 로비와 권력으로 길들인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에 그들만의 질서를 강요하는 모습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침공 이야기다.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을 따르다 경제적 재앙에 맞닥뜨렸던 현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 이야기다. “또 촘스키냐”라는 질문은 이제 던지지 말자. 노엄 촘스키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독자라면, 대화체로 쓰인 이 책이 입문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데이비드 바사미언 지음·장영준 옮김/시대의창·1만45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 ‘뚱보 백수’ 위한 북한산 안내서
〈백수산행기〉 주말 북한산은 도떼기 시장이다. 산이 아니라 앞사람 뒤꿈치를 보아야 한다. 주요 능선은 선이 아니라 4차선 도로다. 전망이 좋아 궁둥이를 붙일 만한 땅이면 으레 시쿰한 냄새가 난다. 뭇사람이 고시레로 흘린 막걸리 냄새가 배고 밴 탓이다. 인간한테 치어 변변한 동물 한 마리 없다. 그런 북한산에 한 뚱보 백수가 홀린 듯이 들어가 살이 쭉 빠진 ‘완소남’으로 변신하고 번듯한 직장까지 얻어 하산했단다. 전설이 사라진 시대에 도사를 만나 무공을 닦았을 리도 없고, 발길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산삼 한뿌리 숨어 있을 리 없는 데서 어떻게 그런 일이? 굳이 답을 하자면 ‘가보면 알아’. 아무리 닳고 닳아도 북한산은 명산이다. 그 많은 인파가 딛고 밟아도 단단한 화강암 바위산이 어디 가겠는가. 봉봉 골골은 언제 가도 거기 있어 아늑한 품을 내준다. 어느 길로 올라도 능선으로 통하고 어느 길로 내려가도 한두 시간, 길어야 서너 시간이면 시내다. 아무리 깊이 숨어들어도 웅웅거리는 도시음이 따라 들어와 길 잃어버릴 염려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 등산처이니 뚱보에다 방향치에다 무한초보도 오를 수 있다. 단, 산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느냐는 본인한테 달렸다. 등산길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들이 알고 보면 도사들이고, 산행으로 고파진 배에 오이 한 개, 김밥 속 우엉 한 조각이 산삼뿌리다. 뚱보 지은이는 그것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가 얻은 것은 가뿐해진 몸이 주는 자신감 외에 번듯한 책 한 권도 있다. 절절한 자기 고백서이니 곧 뚱보 백수를 위한 산행 안내서다. 김서정 지음·지만 그림/부키·1만1000원.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이미지·비유로 ‘과학계 난제’ 설명
〈슈뢰딩거의 고양이〉 나무가 빽빽한 숲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시야는 그 속을 관통하여 뻗어나갈 수 없어야 한다. 수많은 별들로 채워진 우주 공간을 바라볼 때면 밤하늘은 태양처럼 빛나는 별들로 꽉 차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밤하늘은 깜깜하고, 온 우주가 검은색이다. 별들이 끊임없이 멀어져서 미처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가 없어야 이 역설적인 얘기가 완결된다. 우주 팽창설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이를 가리켜 ‘올베르스의 역설’이라 한다. ‘케플러의 난제’는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 곧 아포리즘이다. 지동설을 바탕으로 별들의 운행에 관한 원리를 발견한 케플러가 막상 청중에게 “행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다”라는 천체물리학의 제1법칙을 설명하려 할 때 부닥치는 어려움을 가리킨다. 독일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과학계의 경구를 통해 케플러의 난제들을 해결하려 시도했다. 그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려 “특정한 물음이나 성찰에 대한 명제들을 그것을 최초로 던진 인물과 직접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책의 제목은 양자역학의 선구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반박하려 고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서 따왔다. 피셔는 아인슈타인의 유령, 패러데이의 새장, 멘델의 법칙, 프로이트의 모욕, 오컴의 면도날 등 41개의 명제들을 통해 과학자들이 제기한 물음과 해법을 과학자들이 채택했던 이미지와 비유를 동원해 풀어간다. 그러나 케플러의 난제를 풀어보려는 피셔의 의도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지는 의문이다. 박규호 옮김/들녘·1만5000원.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 기자가 쓴 ‘한국문학 새 지형도’
〈손민호의 문학터치 2.0〉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은 <중앙일보> 손민호(38) 기자의 문학 칼럼을 모태로 삼은 책이다. 신문 기사는 꼭지당 원고지로 8장 분량이었는데, 책으로 바뀌면서 30장 안팎으로 크게 늘었다.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라는 부제에 이 책의 성격이 함축되어 있다. 책은 1970년대생을 중심으로 ‘젊은’ 시인과 소설가 30명을 호출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문학도 변했다”는 믿음 아래 “21세기 한국 문학의 새 지형도를 탐색”해 보겠다는 게 글쓴이의 의도다. 글쓴이 자신이 대상이 되는 작가들과 같은 세대라는 점은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기자가 쓴 글인 만큼 작품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평가보다는 시인·작가들의 인간적 면모와 작품 사이의 상관관계,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문단 안팎의 풍경을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손 기자는 대상 작가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때로는 무모한 주량 겨루기도 마다지 않으며) 그들의 깊은 속내를 끄집어낸다. 기성 문단의 우려와 질책에 일쑤 맨몸으로 노출되곤 하는 또래 작가들은 이 책에서 든든한 응원군을 만나게 된다. 기성 문단의 완고한 관습을 향해 “좃까라 마이싱”이라 일갈하는 소설가 박민규, “내가 좋다는데 왜 지랄이셔”라며 뻗대는 시인 김민정, “시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 의뭉 떠는 시인 황병승 등을 글쓴이는 적극 옹호한다. 새로운 경향에 대한 쏠림이 보이는 가운데, 문태준과 손택수 시인의 고전주의, 김연수 소설의 인문주의 등에 대한 평가도 인색하지 않다. /민음사·1만5000원.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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