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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기본전집 완간 ‘분석심리학 속으로’

등록 2008-05-16 19:43

〈카를 구스타프 융 기본 저작집(전 9권)〉
〈카를 구스타프 융 기본 저작집(전 9권)〉
프로이트의 ‘성욕 중심설’ 벗어난
리비도·종교·성격 유형 등 분석
‘내 안의 나’ 찾는 수많은 통찰들
〈카를 구스타프 융 기본 저작집(전 9권)〉
카를 구스타프 융 지음·한국융연구원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솔·각 권 2만3000원~2만5000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정신분석계의 양대 산맥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답게 이 세계에서 오랫동안 정신분석의 동의어로 통했다.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그와 결별한 뒤 ‘분석심리학’이라는 새 영토를 개척한 융은 ‘아버지’ 프로이트의 아들이라는 숙명적인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신화학이나 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융의 학설은 한층 강한 조명을 받고 있다.

프로이트와 무의식이라는 영역을 공유했지만 그 영역을 해석하는 데서는 견해가 아주 달랐던 융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 저술 가운데 융의 학설을 이해하는 데 필수가 되는 저술을 가려 모은 독일 발터출판사판 ‘융 기본 저작집’이 우리말로 완간됐다. 2001년 저작집 1권 <정신용법의 기본문제>가 출간된 이래 7년 만에 <인간의 상과 신의 상>이 마지막으로 나옴으로써 모두 9권으로 된 기본 저작집이 제 모습을 갖춘 것이다. 분석심리학 연구자이자 한국융연구원 대표인 이부영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축이 된 ‘융 저작 번역위원회’가 10년 동안 공들여 번역한 결과다.

융의 삶과 학설은 프로이트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융은 1907년 프로이트와 만나 그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고,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둘 사이 의견 불일치로 6년 만에 사제관계는 끝이 났다. 융은 프로이트의 ‘성욕 중심설’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융은 말년에 쓴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다만 부차적인 구실만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융과 프로이트의 결별을 공식화한 저작은 1912년 출간된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이었는데, 이 저작에서 융은 성에너지(리비도)를 프로이트와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가 생물학적인 개념이었던 데 반해 융은 리비도를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이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했다. 결별을 야기한 이 저작이 저작집 7권 <상징과 리비도>다. 이 책을 쓸 시기에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자신의 독창적 개념에 이르렀는데, 무의식 내부의 ‘원형’인 집단무의식을 탐구한 논문들은 저작집 2권 <원형과 무의식>에 실렸다.


융 기본전집 완간 ‘분석심리학 속으로’
융 기본전집 완간 ‘분석심리학 속으로’
융은 종교에 대한 생각에서도 프로이트와 의견을 달리했다. 프로이트는 신을 인간의 삶에서 영원히 추방하려고 했다. 추방당한 신의 자리에 놓인 것은 리비도였다.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리비도가 숨은 신의 역할을 맡았다.” 반면에 융에게 종교는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심리적 현상이었다. 융이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는 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했다. 그 숙고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저작집 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 ‘욥에의 응답’은 종교에 관한 심리학적 숙고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구약성서> ‘욥기’의 주인공 욥이 겪은 고통과 욥에게 고통을 안기는 야훼의 분열적 신격을 끝까지 파고들어감으로써, “성서의 말씀 역시 심혼의 표현”임을 입증한다. 융은 신화와 연금술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심층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대상으로 이해했는데, 이 분야에 대한 분석을 담은 것이 저작집 6권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과 8권 <영웅과 어머니 원형>이다.

그런가 하면 저작집 1권 <정신요법의 기본 문제>에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인간의 성격 유형에 대한 분석 글인 ‘심리학적 유형에 관한 개설’이 실려 있다. 성격 유형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이분하고, 그 두 유형에 각각 사고형·감정형·감각형·직관형이라는 하위 유형을 설정함으로써 융은 인간을 모두 8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외향적 사고형’에 관해 그는 이렇게 쓴다. “외향적 사고형의 사고는 긍정적이다. 즉, 창조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실들을 이끌어내거나 아니면 불일치하는 경험 재료들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내향적 감정형 설명은 이렇다. “내향적 감정의 우위를 나는 주로 여성들에게서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말이 없고, 사귀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렵고, 흔히 어린애 같거나 평범한 가면 뒤에 숨어 있고, 또 침울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융은 무의식이 여러 층위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깊은 곳에 ‘자기’가 있다고 보았다. 그 자기를 의식과 통합해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자신이 그런 목표를 지니고 살았다. “내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그의 기나긴 학문 과정은 자기 내부의 또다른 자기와 화해함으로써 자기 삶의 온전함을 이루려는 투쟁이었던 것이다. 이 저작집에서 그 투쟁이 산출한, 인간과 문화에 관한 무수한 통찰들을 만날 수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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