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형이상학〉아리스토텔레스 지음·김진성 역주/이제이북스·4만3000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까지 역사에 등장한 가장 풍부하고 심원한 천재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느 시대도 그에게 필적할 만한 것을 내놓지 못했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의 이런 상찬이 아니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그림)가 스승 플라톤(기원전 427~347)과 더불어 서양 철학의 실질적 기원이자 후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학자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가 쓴 저술은 200편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 5분의 1만이 지금까지 전한다. 그러나 그 남아 있는 저작만으로도 고대 세계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분야를 포괄했다. 자연학 저술에서부터 논리학·윤리학·정치학·시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작이 다루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는 ‘학문의 군주’였다. 특히 체계적 서술이란 점에서 그의 저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의 원형이자 모델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 학술 연구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방법론을 충실히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연구 영역에 포진한 그의 저술 가운데 대표작을 하나만 들라면 〈형이상학〉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내용의 풍부함과 사유의 독창성에서 이 저작과 대비를 이루는 이루는 작품은 플라톤의 대작 〈국가〉(폴리테이아)밖에 없다. ‘철학 중의 철학’ 곧 ‘제1철학’으로 통용되는 ‘형이상학’이라는 철학 분과가 이 저작에서 발원했음은 물론이다. 서양 철학사의 상징적 저작이라 할 이 책이 아리스토텔레스 전문 연구자 김진성씨의 노력으로 마침내 우리말로 옮겨졌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작들과 달리 순수 사유를 다루는 이론철학이어서 독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 때문에 방대한 내용의 일부를 옮긴 경우는 있었지만 그리스어 원전 〈형이상학〉 전체를 완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 김진성씨 6년 걸쳐 번역
각주 2371개·용어해설 150쪽 달하는 ‘역작’
스승이자 라이벌 플라톤과의 지적 대결 볼만
옮긴이는 이 번역본을 완성하는 데 꼬박 6년을 바쳤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 분야로 삼고 독일에서 12년 유학하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만 붙들었던 옮긴이의 이력이 번역본 전편에 꼼꼼하게 배어 있다. 2371개에 이르는 옮긴이 각주는 그 꼼꼼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다. 번역 작업에 활용한 참고문헌 목록만 30쪽이 넘는다. 특히 본문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1870개를 골라 150쪽에 걸쳐 ‘그리스어-한글’ ‘한글-그리스어’ 두 형식으로 설명한 부록은 그대로 그리스어 소사전을 이룬다. 그리스어를 모르는 독자도 이 사전을 활용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뜻에 한층 분명하게 다가갈 수 있다. 새로운 번역 용어를 만들어낸 것도 이 번역본의 특징이다. 그동안 ‘형상’으로 번역되던 것을 ‘꼴’로 옮기고, ‘질료’로 옮겨지던 것을 ‘밑감’으로 옮긴 것은 그 작은 보기다.
영어로 ‘메타피직스’(metaphysics)라고 부르는 ‘형이상학’의 그리스어 원어는 ‘메타-피시카’(meta-physika)인데, 이 책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붙인 것이 아니다. 기원전 1세기 학자 안드로니코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정리하면서 붙인 것이 ‘메타-피시카’다. ‘메타’는 ‘뒤에’ ‘다음에’ ‘너머’의 뜻을 품은 말이다. 안드로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분류하면서 ‘자연학’(피시카) ‘뒤에’(메타) 이 저작을 놓았는데, 그런 서지학적인 제목이 그대로 이 유명한 저작의 이름이 됐다. 안드로니코스의 서지학적 분류는 학문의 연구 순서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형이상학’의 주제는 ‘피시카’를 먼저 알고 난 ‘다음에’(메타) 연구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는 것이다. 자연 만물에 대한 이해를 얻은 후에 그 만물을 아우르는 존재 원리를 논하는 것이 순서라는 얘기다. 후대에 메타-피시카는 자연학을 ‘넘어’(메타) 초월적 세계를 다룬다는 의미까지 껴안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 때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공부했는데, 이 학원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러나 이 수제자는 스승의 철학과 많은 점에서 부딪쳤고 대립했다. “내게 플라톤은 소중하지만 진리는 훨씬 더 소중하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그 대립에서 서양 사유의 원천이 결정적으로 풍부해졌다. 제자가 스승의 견해를 그대로 따랐다면 서양 철학은 지금보다 훨씬 빈약했을 것이다. 스승에 대한 지적 대결은 여러 저술에서 이루어졌다. 〈형이상학〉에서도 그 양상을 볼 수 있다. 플라톤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데아’(형상)인데, 그는 사물의 실체인 이데아가 현실 너머의 하늘나라(본체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이데아를 현실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속에 앉혔다. 형상(꼴)은 질료(밑감·재료)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그림 이제이북스 제공
각주 2371개·용어해설 150쪽 달하는 ‘역작’
스승이자 라이벌 플라톤과의 지적 대결 볼만
옮긴이는 이 번역본을 완성하는 데 꼬박 6년을 바쳤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 분야로 삼고 독일에서 12년 유학하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만 붙들었던 옮긴이의 이력이 번역본 전편에 꼼꼼하게 배어 있다. 2371개에 이르는 옮긴이 각주는 그 꼼꼼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다. 번역 작업에 활용한 참고문헌 목록만 30쪽이 넘는다. 특히 본문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1870개를 골라 150쪽에 걸쳐 ‘그리스어-한글’ ‘한글-그리스어’ 두 형식으로 설명한 부록은 그대로 그리스어 소사전을 이룬다. 그리스어를 모르는 독자도 이 사전을 활용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뜻에 한층 분명하게 다가갈 수 있다. 새로운 번역 용어를 만들어낸 것도 이 번역본의 특징이다. 그동안 ‘형상’으로 번역되던 것을 ‘꼴’로 옮기고, ‘질료’로 옮겨지던 것을 ‘밑감’으로 옮긴 것은 그 작은 보기다.
마침내 완역된 ‘철학 중의 철학’
그림 이제이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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