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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동학자 분노케할 ‘유전자 결정론’

등록 2007-07-27 20:15수정 2007-07-27 20:24

<개성의 탄생>
<개성의 탄생>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개성의 탄생>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곽미경 옮김/동녁사이언스

한동안 조용했던 과학출판계에 문제작이 나타났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가 쓴 <개성의 탄생>은 사람들의 상식을 무참히 깨고, 주류 과학자들을 잔인하게 비판하며,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설을 단정적으로 주장한다. 세상에,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책이 또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며 아동심리학자들은 분개할 것이다. 처음 200쪽까지는 추리소설책을 방불케 할 만큼 재미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미국 과학출판계에선 잘 알려진 ‘할머니 저술가’다. 면역기능저하질환인 루푸스와 전신성 경화증을 앓느라 하버드대 심리학과 석사를 겨우 졸업한 그는 지난 40년간 동네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고 이메일로 과학자들과 대화하며 책을 써왔다. 한마디로 ‘사설 과학자’인 셈이다.

그는 <개성의 탄생>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이라는 가정환경이 개인의 성격 형성에 과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쟁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박진감 넘치게 기술하면서 강하게 주장한다.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 형제, 입양아 등 유전자를 공유한 정도가 다른 아동들이 비슷하거나 다른 환경에서 양육됐을 때 성격이 유사한 정도를 조사한 연구들을 근거로 ‘개성의 45%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55%의 개성은 무엇에 의해 형성된 것일까?

여기서 그의 주장을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결코 환경이 사람의 성격 형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환경이 사람들에게 ‘일관된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환경이 사람들에게 일관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는 ‘공유된 환경’으로 인해 어느 정도 비슷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형제들의 성격은 얼마나 다른가. 출생 순서가 중요하다고? 같은 부모라도 형제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고려해서 부모의 양육방식이 아이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지 조사해보면 과연 결과는 어떨까? 결과는 환경은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평생 ‘부모의 올바른 육아방식’을 연구해온 아동심리학자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지은이의 주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동발달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부모의 육아방식이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가 얼마나 빈약한가 하는 사실이다. 지은이에게 무참히 깨진다.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그런데 허탈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그렇다면 과연 유전자가 담당하지 않는 개성의 55%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은이의 주장은 초라하다.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라는 대뇌신경네트워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친 사회화 과정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들은 ‘유전자나 환경’과 전혀 상관없는 것일까?

범행 현장을 어슬렁거리던 용의자들을 명쾌한 논리로 하나씩 범인이 아님을 추리해나가던 탐정에게 ‘그렇다면 범인이 누구란 말이요?’라고 물었더니, 횡설수설하는 꼴이랄까? 이 책의 나머지 200쪽은 지루하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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