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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보통 마니아’들이 기다린 고급 에세이

등록 2007-06-22 19:27

<행복의 건축>
<행복의 건축>
베스트셀러 읽기 / <행복의 건축>

‘보통 마니아’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작품에 열광하는 국내 독자군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달 출간된 〈행복의 건축〉은 ‘보통 마니아’가 얼마나 넓게 포진해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게 해주었다. 가볍게 읽히는 책이 아닌데도 출간 한 달 만에 3만 부가 팔렸다. 대형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서 다른 얄팍한 책들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추이를 보면 드 보통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의 건축〉을 펴낸 이레출판사의 이승희 편집장은 “지금까지 나온 드 보통의 책들에 비해 확실히 판매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드 보통의 책이 처음 국내에 출간된 것은 1997년이다. 그의 초기 소설 3부작 가운데 하나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이듬해에 〈로맨스〉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드 보통은 국내 독자에겐 낯선 이름이었고, 시장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보통 마니아’가 형성된 것은 2002년 이후의 일이다. 이미 번역된 그의 소설들이 다른 출판사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로 다시 출간됐고, 그의 소설 3부작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도 번역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의 에세이들도 남김없이 출간됐는데, 이제는 독자들이 그의 새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행복의 건축〉도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된 최신작을 곧바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승희 편집장은 “2005년 〈불안〉 출간 이후 신작이 2년 동안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기다리던 독자들이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으로 몰려간 것이 초기 판매량을 확 키운 것 같다”고 분석했다.

드 보통의 작품은 인간에 대한 통찰이 위트와 잘 섞여 있다. 문장은 윤택하고 담백하다. 그의 작품은 ‘고급 에세이’에 목말라 하는 독자층이 꽤나 두터움을 방증한다. 〈행복의 건축〉에서도 그는 건축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삶에 대한 설득력 있는 직관을 결합해 그 자신의 독특한 건축론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모더니즘 건축양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돌프 로스가 〈장식과 범죄〉에서 불필요한 장식은 범죄행위와 같다며 모든 장식을 걷어내라고 일갈했던 때에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똑같은 목소리로 장식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미래의 주택들이 금욕적이고 깨끗하며, 규율과 검약이 지배하는 곳이기를 바랐다.” 모든 장식을 혐오한 그는 “날아야 한다는 요구 때문에 비행기에서는 모든 불필요한 장식이 사라졌으며, 그 때문에 비행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성공적인 건축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요컨대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집의 요체를 아름다움이 아닌 기능에서 찾았다는 것인데, 드 보통은 모더니스트들이 결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과거의 미적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아름다움은 집의 핵심적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궁극적으로 집은 인간의 행복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 드 보통이 이야기하면 건축론도 흥미롭고 유쾌한 지적 유희가 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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