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
베스트셀러 읽기 / 지식e-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어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 시는 섬뜩하고 비극적이다. 화면은 말없이 시를 보여줄 뿐이다. 이미지를 응시하는 사람의 뇌에선 충격의 파문이 인다. 〈교육방송〉의 5분짜리 다큐멘터리 〈EBS 지식채널e〉는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파격적인 실험이다. 영상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이 짧은 방송물이 과연 책이 될 수 있을까. 북하우스 출판사는 성공적으로 이 의문의 벽을 뛰어넘었다. 독자의 반응은 차분하면서도 도도하다. 지난 4월 출간돼 한달 보름 만에 2만 부 넘게 팔렸다. 인문서에 가까운 책의 성격을 감안하면, 꽤나 뜨거운 열기다.
책을 편집한 북하우스의 심선영씨는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EBS 지식채널e〉를 즐겨 보는 시청자들이 책으로 내 달라는 요청 글을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전화로 문의하는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심선영씨 자신이 〈EBS 지식채널e〉의 맹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매일매일 프로그램에 감동하다가 이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상을 지면으로 옮기는 일이 난관이었다. “초기엔 내레이션도 없고 음악과 영상과 텍스트가 전부였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영상과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정말 안타까웠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책으로 엮는 일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책에 대한 독자의 호응은 그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졌음을 입증한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이 18건 올라 있다. 포세이돈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독자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 적은 있지만 텔레비전을 보고 난 후 멍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썼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꼼꼼히 제시한다. 매우 절제되고 다듬어진 언어와 영상으로 문제를 제시한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부분, 그래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이 책은 독자에게 전달한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도 추천사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정보의 홍수는 인간을 무덤덤하게 만든다. 아무리 가슴 아픈 사연도 우리는 그저 뉴스거리로만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우리에게는 그저 시사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덤덤한 용어를 〈지식채널e〉는 비로소 절실한 ‘삶’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이 책은 마음과 느낌이 담기지 않은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진중권씨도 그 점을 이야기한다. “속좁은 이해관계를 넘어서 정말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반드시 갖추어야 할 ‘앎’들이 있다. 이 책에 모아놓은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앎들이다. 흔히 우리는 그런 앎을 ‘성찰’이라고 부른다.” 그 성찰이 담긴 앎이 두 번째 책으로 묶여 9월 말쯤 나올 예정이라고 심선영씨는 말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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