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파란만장 한 시대 풍미했던
고수 중 고수 ‘노름마치’ 18명 삶
100번 고치고 닦아 써내려
“우리 예술사, 이들 비켜갈 수 없어”
고수 중 고수 ‘노름마치’ 18명 삶
100번 고치고 닦아 써내려
“우리 예술사, 이들 비켜갈 수 없어”
책·인터뷰 / ‘노름마치’ 쓴 연출가 진옥섭씨
“일어나 춤을 추면 ‘외양간의 누운 소가 돌아보고’, 앉아 소리하면 ‘헛간의 도리걔도 들썩인다’는 짜하던 명성은 이미 옛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사에 대한 관심마저 끊고 말문을 걸어 잠갔다. …욕망을 주입하여 생긴 침 자국을 함봉한 반창고. 더이상 헤집을 곳 없이 찔렀기에 겹겹이 붙어 벗겨진다. 마치 먼 고해의 바다에서 간신히 돌아온 늙은 연어의 낡은 비늘 같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탈해가는 허연 비늘.”
<진옥섭의 예인명인 노름마치>(생각의나무)는 이들을 세상에 다시 불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때로 아릿한 과거를 불러내려 “주제넘은 짓”도 했다. “아픔을 들추는 잔인한 방법이지만, 가장 신선한 기억은 슬픔 근처에 있었다. 눈물에 절여져 부패하지 않았던 것이다.” 펄펄뛰는 묘사가 걸직하고 절묘하며 명쾌하다. 그저 익힌 재주가 아니라 고해의 바다를 헤엄쳐온 늙은 연어 같은 통찰까지 담았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은 이제 겨우(!) 43살이다.
“2004년 2월, 군산의 예기 장금도가 춤추었다. 인력거 두 대를 보내야 춤추러 나오던 명성도 잊었고, 춤추던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듯했다. 침묵한 세월 속에 풍화가 가속되어, 동작마저 흩어지고 단 한 줌 남았다. 그 분말이 박수의 진동으로 공기의 결 속에 스미고 있었다. 축축한 시나위가락이 다가오자 결로되어 손끝으로 춤이 뚝뚝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박수의 순도’다. 장단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박수는 “순서 외느라 고생 많았소” 정도의 의례적인 격려일 뿐이다. 전통공연에서 박수란 “열화와 같은 무엇이 아니라, 순간 튀어나오는 참을 수 없는 탄성이다.” “가령 춤으로 친다면, 박을 밀려 밟으며 불안을 조성해 관객의 등을 의자 등받이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다시 화급히 당겨밟아 몸을 젖히게 한다. 이렇게 무대의 박자에 관객을 개입시켜 쥐락펴락하면 서서히 소리없는 박수가 고이고, 마침내 현란하고 아찔한 순간을 못 견뎌 ‘얼씨구!’ 추임새를 넣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격정이 몇 번 지나간 뒤 무대인사 때의 박수는 완벽한 ‘순도’를 지닌다. “3층 끝에서부터 눈처럼 돌돌 말려 내려온다.” 정녕 시간을 잃어버린 순간. “박수 중 최고의 순도인 ‘시실리(時失里)’ 박수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분량의 삶”이 실린, “극심한 기갈을 달랜 그 한판” 끝에 “3층부터 무너져 내려오는 박수”에 묻히는 순간 기획자 진옥섭은 “슬픔이 떠밀고 온 그 분량 앞에 무릎을 접었다. 내 생애의 길이가 그 순간과 포개질 수 있었음을 진저리치며 감사했다.” 그리고 “목젖이 쏟아지게” 외친다. “보시오! 우리 예술사가 결코 이 분(들)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노름마치’다.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을 합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가리키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고수 중의 고수다. <노름마치>는 바로 그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고해의 파란만장을 거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통예술의 달인들, 80, 90살이 넘어 ‘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 얘기다. 저자가 기획한 공연무대에 오른 달인들 현장취재기이자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군산의 천생 춤꾼 장금도, 동해 학춤 한량 문장원과 구음으로 학춤 추임새를 넣는 유금선, 중고제 소리 최후의 명무 심화영, 굿판의 명무 김유감. 이들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지. 흔히 얘기하는 기생, 광대, 무당, 춤꾼의 최고봉이되 지금 세상은 아예 모르거나 잊어버린 이름들이다. 진옥섭은 한사코 사양하는 그들을 무대에 오르게 하려고 돈으로 흥정도 하고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얘기 몇 마디만 들어보면 옛날 얼마나 셌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광대 강윤섭에게 ‘광대가 뭐냐?’고 물었더니 “많이 불러주면 좋고.” 딱 이 한마디뿐이었다. “지금 예술가들이라면 온갖 이론과 미사여구를 들먹이겠지만 나는 모든 걸 말해주는 그 한마디로 그가 진정한 광대라는 걸 알아차렸다.”
연극하겠다고 덤볐다가 대학 때 탈춤에 빠진 뒤 전통예술 기획 쪽에 죽 몸을 담았다. 석촌호수에서 하는 ‘서울놀이마당’ 감독 등도 했고 한국방송(KBS)에서 그 분야를 다루는 계약직 피디로 한 3년 일한 적도 있는 진옥섭 자신이 이미 몇 마디, 작은 몸동작 하나로 급수를 가늠할 만큼의 ‘경지’에 오른 셈이다. 이런 글을 ‘보도자료’ 등의 이름으로 쓰기 시작한 건 15년 쯤 됐고 책으로 내겠다는 생각은 5년 전부터 했다. 이번엔 두 권의 책에 모두 18명의 예인들 얘기를 담았는데, “고쳐 쓰면서 한 편당 백 번은 더 갈고 닦았다.” 그는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문제로 “밤마다 울었을 만큼” 그 문제를 중시한다. 술마시고, 책보고, 공연보고 떠드는 게 ‘3락’인 ‘백수’ 진옥섭이 보기엔 그런 일 하려면 “지적인 아니리도 좀 있어야” 한다. 18명은 애초 예정의 절반이다. 나머지 18명 얘기도 준비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노름마치’ 쓴 연출가 진옥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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