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문학동네 펴냄. 9500원
잠깐독서 /
조정래씨의 소설 <오 하느님>은 치명적인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에 편입된 조선인 청년 신길만. 애초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전쟁터에 내던져진 그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라 할 고향으로부터 점차 멀어져서는 마침내 원치 않았던 시간과 장소에서 뜻하지 않았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신길만의 운명이 비극적 종말을 향해 치달아 가는 과정은 2차대전의 전황이라는 역사의 커다란 흐름이 추축국 일본과 독일의 패망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포개진다. 긍정적인 역사의 흐름과 비극적인 개인사의 변전. 이 둘 사이의 아이러니에 소설의 주제가 담겨 있다.
<오 하느님>은 노르망디 전투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힌 독일군 병사들 속에 조선(한국)인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자료에 근거해서 쓰여졌다. 소설 속에서 신길만 등은 관동군의 일원으로서 1939년 여름 노몬한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며, 소련군에 편입되어 독일군을 상대하다가는 다시 독일군의 포로를 거쳐 또 다시 독일군의 신분을 획득하고, 마침내는 1944년 여름 노르망디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소련으로 송환되는 도중에 총살 당한다.
주인공 신길만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개죽음을 맞는 <오 하느님>의 결말은 작가 조씨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결말을 떠오르게 한다. <아리랑>에서도 만주의 조선인들에게 8·15 해방은 중국인들에게 쫓겨 고향에서 멀어지는 형태로 다가온다. 해방이 ‘재앙’으로 몸을 바꾸는 아이러니다.
이런 아이러니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약소민족의 서러움’에 그 답이 있다. 스스로 제 운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신길만의 처지는 오로지 그가 힘 없는 민족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미군의 포로가 된 신길만 등이 ‘조선인’이라는 자신들의 국적 또는 민족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미군 포로와 교환 조건으로 소련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은 강대국의 ‘거래’에서 한갓 교환용 물품으로 취급되는 약소민족의 처지를 아프게 확인시킨다. 21일 낮 기자들과 만난 작가 조씨는 “역사가 어떤 식으로 바뀌든 강대국의 횡포는 여전하다는 것을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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