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적 위주의 서점인 오평은 말 그대로 5평형의 작은 서재가 있는 책방이다. 우리의(오) 평안한(평) 책방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오평은 흔치 않은 검은색 콘셉트의 책방인데, 모든 색의 종착점이자 모든 색을 내포하는 색이 검은색이라 생각한다. 빛나고 싶은 것들을 돋보이게 하고, 감추고 싶은 건 가려주는 포용력 있는 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평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느끼는 여러 감정을 모두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다정한 책방이 되길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오평은 독립출판물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책방이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얻어낸 물건에 더 애정이 깃든다 생각한다. 기성출판과 달리 희소성이 있는 독립출판물이 독자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또 개인적으로 ‘독립’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물질적인 독립이나 정신적인 독립에 대한 갈망이 늘 마음에 자리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갈망하는 저자들의 다양한 색이 드러나는 독립출판에 마음이 당연히 기울 수밖에 없다. 허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만을 토로하는 책은 입고를 지양하고 있다. 기성출판물이 읽히기 위한 책들이라면, 독립서적은 ‘쓰임을 당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많다. 앞으로 독립출판물이 더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나와 독자를 함께 생각하는 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평은 물리적으로는 작은 공간일지 모르나 책방지기에게 이곳은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와도 같다. 작년에는 대학을 막 졸업한 일러스트 작가와 고전소설 ‘데미안’을 재해석한 전시를 열었다. 나를 찾아가는 길이자 치열한 성장 기록인 이 소설의 전시는 초보 책방지기와 사회인으로서 새로 발돋움하는 일러스트 작가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취향을 정의하고 이를 분명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은 자신의 세계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어느 독립서적의 글귀와도 잘 어우러진 전시였다. 주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보다 객체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나’에 더욱 집중하는 우리의 삶이, 우리 자신에게 향했으면 하는 바람이 늘 있다. 오래도록 읽히는 ‘데미안’처럼 21세기의 방황하는 싱클레어들이 쉬어갈 수 있는 평안한 공간으로 있고 싶다.
오평의 검은색을 담은 특별한 모임이 있는데, 매달 마지막 날에 함께 유서를 써 보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것을 좇아 그리거나 쓰다가 틀렸을 때 지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잠깐 까맣게 덮어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애써 지우려고 하지 말고 까맣게 전부 칠해버리자고. 하얀 도화지에만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까만 도화지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꿈을 새로 그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어느 순간이 가장 빛났는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유서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새로운 출발 내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준비했다. 오평에서 준비한 까만 도화지에 당신이 그려낼 것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어둡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밝고 희망찬 시간이기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말일을 기다린다. 나 역시 오평이라는 새까만 공간에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무엇이든 기꺼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색으로 말이다.
수원/글·사진 오수민 오평 책방지기
오평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청명북로7번길 8-16(영통동)
ohpyeong.com
책방 오평에서 진행하는 유서 쓰기 모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