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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오르락내리락, 삶의 놀이터 ‘시소책방’ [책&생각]

등록 2023-11-03 05:01수정 2023-11-04 00:00

우리 책방은요 │ 시소책방
시소책방 외부 모습.
시소책방 외부 모습.

지리산, 섬진강, 남해바다 그리고 송림…. 생명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하동이 내 고향이라는 게 늘 자랑스럽다. 지리산둘레길에서 활동가로 12여년 지내다 갑자기 난치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만나 거동이 힘들어진 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숨었지만, 결국 두 달을 못 버티고 책방을 열어 새로운 인연에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2021년 5월 하동 읍내에서 송림(천연기념물 솔숲) 가는 삼거리에 예쁜 시소를 마련했다. 서로의 무게를 맞추고 배려하면서 경쟁이 아닌 서로 간의 호흡이 맞을 때 오르락내리락 재미가 있는, 시소는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책방 이름을 ‘시소’라 지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쁜 날도, 땅이 꺼질 듯 슬픈 날도 있는 우리 인생 같은 시소. 그리고 나의 병과 닮은 시소.

‘시소책방’에선 책만 판매하는 게 아니다. 낭독모임, 독서토론모임, 북토크, 사진전, 청소년상담(무료), 타로점(무료) 때로는 버스킹 공연 등이 열리는 ‘동네 책 놀이터’다. 단골손님을 제외하면 관광객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하동 알리미 역할도 한다. 말동무가 되어 하동의 곳곳을 안내하며 책도 함께 골라 드리고 여유가 있으면 차 한 잔 대접하며 돌멩이에 그림을 그려 선물도 한다. 돌멩이 그림과 책 필사는 손 근육을 키우기 위한 책방지기의 취미이자 치료이기도 하다.

시소책방 내부 모습.
시소책방 내부 모습.

시소책방에서 열린 이예숙 작가 북토크.
시소책방에서 열린 이예숙 작가 북토크.

시소책방에서 그림책을 읽는 ‘꽃보다 하동 할매’ 모임.
시소책방에서 그림책을 읽는 ‘꽃보다 하동 할매’ 모임.

손님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오히려 그럴 때가 더 소중하다. 약 기운이 있을 때 해야 할 일이 많다. 사실 나는 책방 점원이고 책방 주인은 빨강머리 앤이다. 직접 색칠한 앤이 바깥에 나와 있으면 책방이 열렸다는 뜻이다. 명절, 병원 방문, 몸이 아픈 날에는 미리 공지하고 무인판매를 하며 앤 혼자 책방을 본다. 권정생 선생님도 흐뭇하게 자리를 지키고, 노자와 니체, 카뮈, 헤세, 사강, 백석, 윤동주, 하루키, 오웰, 보부아르, 프로이트 등도 함께 시소를 탈 친구를 기다린다.

“좋은 동화책 한 권은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이다. 책 속에 수많은 진리와 지혜가, 그리고 삶의 방향이 모두 들어 있다. 따뜻한 동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평균 나이 86살의 그림책 모임 ‘꽃보다 하동 할매’는 이곳을 더 풍성하게 하고 나를 버티게 해 준다. 파킨슨 말기인 나보다 더 활력이 넘치고, 책방 모임을 즐긴다. 어린이들이 편하게 찾는 책방을 지향하기에 평생의 삶에 영향을 미칠 좋은 그림책을 골라 어린이와 어린이였던 어른들에게 권한다. 그림책은 내면의 어린아이를 치유하는 힘이 있음을 늘 확인한다.

시소책방 책방지기의 취미 돌멩이 그림.
시소책방 책방지기의 취미 돌멩이 그림.

밴드 ‘언제나 봄’의 버스킹 공연.
밴드 ‘언제나 봄’의 버스킹 공연.

시소책방에서 열린 사진전.
시소책방에서 열린 사진전.

지리산을 인연으로 만나 책방 근처에서 두 번이나 버스킹을 열어준 밴드 ‘언제나 봄’. 지난해 그날은 동네잔치나 다름없었다. 꽃집에선 큰 국화 화분들을, 우유 가게에선 요구르트를, 찻집에선 강정과 매실 주스 등의 후원과 후원금을 지원해주셔서 밴드에게 인사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올 10월 중순에도 하동과 이웃들을 위해, 아픈 몸으로 책방을 운영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멋진 공연을 펼쳐주었다. ‘동네 작은 책방’이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불러주었는데, 올해 음원으로도 나왔다. “하얀꽃 한 아름 빨강머리 앤/ 활짝 웃는 동네 작은 책방(…)” 어떤 선물보다 소중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동/글·사진 최정임 시소책방 책방지기

시소책방

경남 하동군 하동읍 남당길 50

instagram.com/see.saw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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