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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태원 참사, 축소하고 외면하고 무시하면 해결되나요 [책&생각]

등록 2023-10-20 05:01수정 2023-10-20 09:14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일년 기록
‘사회적 참사’ 구체적으로 그려

개인 탓 돌리는 무감·무지한 사회
타인의 고통 함께하려는 공감도
지난 8월2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8월2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이 건너온 319일의 시간들
김초롱 지음 l 아몬드 l 1만8000원

“핼러윈은 참사의 원인도 본질도 아니다. 축제에 나선 사람들은 죄가 없다. (중략) 긴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고, (책임자들은) 처벌받은 게 없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최근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 압사 사고로 159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다친 이 ‘사회적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일년을 보낸 생존자 김초롱씨가 쓴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이태원 참사 뉴스를 많이 본 사람들은 어쩌면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무엇이든 단정하고, 함부로 아무 말이나 뱉어낸다.

이 책은 그토록 무감하고 무지한 우리 사회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김씨는 사건 직후 사촌 오빠에게 “너 거기 갔었어? 아휴,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뭐 좋다고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놀러 다녀. 어디 다친 데는 없어?”라는 말을 듣는다. 분명 자신을 걱정하는 전화였지만 그 말은 상처가 됐다. 지인들만이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김씨는 “놀다가 죽은 걸 뭘 어쩌라는 거냐”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목격하는가 하면,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에 네가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거니?”라는 질문도 받았다. 김씨의 마음을 더 시퍼렇게 멍들게 한 것은 국무총리와 정치인, 시의원들이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다. 생존자에서 159번째 희생자가 되어 떠난 학생을 두고 국무총리는 “해당 학생이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말로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렸다. “국가적 비극을 이용한 ‘참사 영업’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나라 구하다가 죽었느냐”라는 막말이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는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생존 이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을 자책하는 김씨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회적 참사 피해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저자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혹시 변화의 땔감으로 쓰인다면, 혹시 타인을 살리는 기록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침묵을 깨고 고통을 자원화”했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가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축소하고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절망뿐일까. 다행히도 책에는 김씨에게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라고 말해주는 상담사가 등장하고, 우울감에 시달리는 김씨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마. 사실 나는 남들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 가장 힘들었어”라며 잠이 안 올 때 구겨진 마음을 곱게 펴듯 다림질을 해보라고 조언해주는 언니도 등장한다. 김씨가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 또 김씨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어준 다정한 이웃들을 통해 공감이란 무엇인지, 타인의 고통을 구경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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