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방은요 │ 오롯서점
자랑할 것도 딱히 없는데, 덜컥 책방 소개 글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큰일 났다. 책방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길 하나, 차별화된 특색이 있길 하나, 공간이 멋들어지길 하나. 그렇게 며칠 동안 ‘오롯서점’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고, 감사하게도 이렇게 큰 지면을 빌려 정리를 해 본다.
먼저 서점 이름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 생각 외로 서점 이름의 의미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의미는 국어사전 그대로다. 오롯하다: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다. 오롯서점은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책과 마주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세상의 온갖 소음 속에서 오롯하게 책과 나 자신만 고요히 마주하는 그런 공간. 나 역시 동네책방 손님이던 시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곳의 작은 동네서점들을 다니며 무척이나 행복했으니까. 오롯서점은 딱 그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서점을 열고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이지 독자별 맞춤 정기구독 외엔 아무런 프로그램도 운영하지 않았다. ‘오롯한 정기구독’은 신청하신 독자님의 책 취향이나 현재 상황에 맞춘 책으로 큐레이션 해드리는 정기구독 서비스였다. 생각해 보면 정기구독으로 이어진 인연 모두 참 고맙고도 특별했다. 가깝게는 서점이 위치한 경북 상주 시내의 독자님부터 저 멀리 서울에 계신 독자님까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도록 독자님의 이름을 불렀으니까. 정기구독을 받으실 딱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책을 고르고, 그 계절만의 안부를 묻고, 엽서를 쓰고, 다정함 한 스푼을 함께 넣어 포장을 하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참 좋았었다. 그래서 엽서의 마지막은 늘 ‘어느 좋은 날, 오롯 드립니다.’였다. 여름의 끝, 모두 잘 지내고 계시지요?
무슨 일을 하든 가능하다면 마음을 기다려주는 편인데, 올해 가장 잘한 일은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낯가림이 심해서, 말을 잘 못해서, 용기가 없어서 등등 미룰 이유는 많았다. 그러다 드디어 마음이 생겼다. 이유는 단 하나, 책 이야기로 서점을 북적이게 하고 싶다는 것! 그렇게 시작한 독서모임이 이제는 3개다. 모임 하나는 어쩌다 보니 고전 위주로 읽는 모임이 되었다. 고전을 전혀 읽지 않았던 멤버분도 계신데, 이제는 고전 마니아가 되셨다. 나 역시 고전의 맛을 새삼 느껴가는 중이다.
다른 모임 하나는 책 취향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분들이셔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찰떡같이 공감이 일어난다. 모임 첫날, 그간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며 쏟아지는 책 목록들에 신나게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타인도 읽고 좋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의 그 행복감이란! 책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감탄사와 함께 서로 주고받는 눈빛만으로도 만족감은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 모임은 멤버들 성향이며 읽는 책 취향이며 정말, 정말 다르다. 그런데 달라서 또 좋은 모임이다. 평소에는 계속 미뤄두거나 읽지 않았을 책을 이 기회에 읽어 보기도 하니까. 그리고 너무 다른 서로에게 우리는 계속 배우니까. 그렇게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접촉’의 장이니까. 쑥스러움 때문에 모임 주최를 꺼리던 내가 이제는 독서모임에 있어서는 예찬론자가 되었다. 혼자 읽을 때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 독서모임으로 밝히는 불빛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린 따로 또 같이 ‘읽는 사람’들로 연결될 테니까. 별자리처럼.
단순하지만 여기까지가 서점의 모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자랑할 것이 아주 뚜렷이, 크게 보인다. 바로 오롯서점을 찾아 주시고 좋아해 주셨던 많은 분들! 그리고 독자님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찾아 주시는 분들과 앞으로 방문하실 분들까지! 인구 10만이 되지 않는 소도시 상주이지만 인사이동이나 졸업 입학 시즌이 되면 서점에서도 변화를 느낀다. 인사발령, 학업 등등의 이유로 오랜 단골님들이 상주를 떠나게 되셨다고 인사차 방문하시면 그렇게 마음이 헛헛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점을 연 초기에는 그 헛헛함이 꽤 컸다.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오실 때마다 나누었던 책 이야기, 일상 이야기들이 쌓이고 그만큼 시간도 쌓였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심란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왔다. 여러 상황으로 떠나는 분들도 계시고, 사정상 발길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또 새로이 찾아 주시는 분들도 계시질 않은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깨닫는 중이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 앞에서 평온함을 찾고 나니 이제는 서점을 찾으셨던 모든 분들의 한 시절에 오롯서점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을 연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오롯서점이 누군가의 한 시절과 함께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일 것이다.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서점은 열려 있다. 오롯하게.
상주/글·사진 오롯지기
오롯서점 내부 모습.
오롯서점 간판.
오롯서점의 ‘오롯한 정기구독’ 서비스.
오롯서점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들.
오롯서점 독서모임의 순간들.
오롯서점 외부 모습.
오롯서점
경상북도 상주시 서문길 111-5 (서문동)
instagram.com/orotbooks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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