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한겨레21>과 인터뷰할 당시의 황인찬 시인.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황인찬 지음 l 문학동네(2023) 손에 잡히지도, 여간해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말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 잡아 이전엔 없던 기분을 만들어낸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씨앗이 날아가 상대방의 마음에 심겨 그 자리에 예상치도 못한 작물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어떤 말은 그것을 꺼낸 사람이 짐작했던 크기 이상의 파장을, 그 말을 건네받은 사람의 내면에 일으킨다. 세상에는 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제 마음대로 꺼내 든 말로 힘을 부리는 상황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말을 ‘들은/건네받은’ 사람에 의해 그 말의 처음 의도를 넘어서는 힘이 길러지는 상황도 있다. 말을 듣는 편이 마냥 수동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혹은 같은 이유로 말을 꺼낼 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을 전해 듣는 이를 우습게 여기지 말 것, 함부로 말하지 말 것. 말을 듣는 이가 그것을 어떻게 가꾸는지에 따라 그 말에 담긴 힘이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 생겨난 말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권력을 영위하는 일에 급급한 정치세력이 부지기수로 꺼내 드는 기만적인 말과 마주칠 때마다 그 말을 듣는 우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잊지 말자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부로 꺼내진 말들은, 그것을 ‘들어버린’ 이들에 의해 내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말이 어떻게 끝까지 남아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지를, 문턱을 넘어 집으로 들어온 ‘새’의 이미지로 표현한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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