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등단 이서수 첫 소설집
5년가량 공백기 직접 견디며
2030 시대감각 ‘처연-명랑’한 수작
“글쓰기 멈추면 더 힘들어 계속 써”
5년가량 공백기 직접 견디며
2030 시대감각 ‘처연-명랑’한 수작
“글쓰기 멈추면 더 힘들어 계속 써”
2014년 등단 후 처음 소설집을 펴낸 이서수 작가. 은행나무 제공
이서수 지음 l 은행나무 l 1만5000원 2014년 등단한 소설가 이서수(40)의 첫 소설집은 단편 10편으로 꽉 차 있다. 소재도 인물도 다양하지만 어떤 독법으로든 피할 수 없는 여운이 있다. 때로 소통이 어근버근한 인물들끼리도 끝내 저버리지 않은 채, 서로에게 열어 두는 시선의 애틋함. 어떤 반목과 불화는 뒤에 보니 시치미 뗀 살가움이라서 웃고 만다. 책은 등단 1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의 첫 소설집이란 작가 소개에서부터 읽어갈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엔 “등단 후 꽤 오랜 기간 청탁이 없었”다고 쓰여 있다.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최진영도 <한겨레> 북섹션의 연재 칼럼 ‘나의 첫 책’에서 비슷한 경험을 고백(<한겨레> 4월29일치 36면)한 적 있다. 그래서 장편소설 공모전에 수차례 도전했다는 점까지. 이서수는 “그 글 보고 많이 놀랐었다”며 “괴롭던 시기, 글을 멈추는 게 더 힘들어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고 8일 <한겨레>에 말했다. 어떤 좋은 작품이 독자 손에 닿기까지의 감춰진 경위일 것이다. 29살 소설 쓰기를 작정한 이래, 이 시기를 관통해 직조한 단편 10편은 젊은 세대가 건너온 근 10년의 시대상을 투사한다. 2021~22년 발표된 작품만 7편. 작가 역시 30대를 갈무리하던 때다. 이 시대 이들이 처한 슬픔은 어떤 양태인가. #1. “사영의 가방은 묵직하게 찼고, 내 가방은 빈 물병만 굴러다녔다. (…)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나 자신에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참을성이 강하다는 게 약간 슬펐다.”(‘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응급실 간호사로 죽음 앞에서 실존적 고통을 겪는 사영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반면 마흔이 넘어서도 글을 포기 못 한 가진(‘나’)의 실존적 고통은 “확신할 수 없는 재능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빈곤에서 비롯한다. 가장 현실적인 꿈처럼 찾아낸 것이 3천만원짜리 지방 도시의 아파트 한 채인데 구입 전 막상 실물이 초라할까 두렵다.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게 되리란 공포랄까. 그런 가진이 어린 사영의 고통을 나누고 어딘가에 발을 딛고자 한다. #2. “언니, 나 오늘 돈이 없어서 고깃집 앞을 지나가다 울 뻔했어.” “나는 언니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꼰대가 되어버린 게 슬퍼. 혹시 우리 가족이 언니를 그렇게 만든 걸까…”(‘젊은 근희의 행진’) #3. 노인을 꺼리는 임대인들(“우리 집에서 고독사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거 냄새가 아주 지독하대요”)에 관한 기사를 보며 ‘아내’ 왈 “내가 집 없는 80세 할머니가 되면, 나는 길바닥에서 죽어야 할지도 몰라. 아무도 나에게 집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아.”(‘나의 방광 나의 지구’) 80년대생 부부는 이제라도 빚을 내 수도권 외곽 아파트라도 사보고자 한다. 20대 땐 습작과 소설 필사를 좋아하던 아내가 이젠 부동산 전략서를 옮겨 적지만, 막상 빌라도 요원하다. 남편은 결국 ‘과민성 방광’을 앓는다. “집을 사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절박뇨로 나타나는 현실”에 화가 난다, 분노와 요의를 동시에 참아야 하는 거다. 부부가 마침내 찾은 해법이 집요하여 더 허무한 정신승리인 까닭. 하지만 여기 어떤 슬픔도 죄책감서 머물거나 죄책감을 동반하지 않는다. 개인이 자처했거나 자책할 무엇이 아니란 얘기다. 이서수는 슬픔을 궁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천연스레 농을 섞고 조도를 높인다. 임신중지 수술 앞둔 ‘나’가 새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망정 “내가 느끼는 죄책감 때문에 슬퍼하지 않”(‘엉킨 소매’)겠다는 각오까지. 표제작 ‘젊은 근희의 행진’에 그 모두가 담겼다. 근희는 막 서른살이 된다. 그간 어떤 직업도 6개월을 못 넘겼다. 언니 문희가 빌려준 보증금으로 세살이 중인 근희는 급기야 일 다 접고 유튜버로 나선다. 먹방, 술방 뒤 북튜버(책이 콘텐츠)로, 가슴 파인 옷을 입고서. 생각도 개념도 없어 “아메바”라 불리면서도 기대기만 하는 근희를 문희는 힐난하면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선 동생 얘기하며 운다. “내가 걔를 너무 챙겨줬어. 걔가 그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 “…어머머, 근희 가슴이 왜 이렇게 커? 친구들은 오근희의 방송을 보고 나서 나의 상반신을 보더니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벌컥 소리를 내질렀다. 저급한 것들아, 내 동생 가슴 그만 봐! 나는 친구들을 향해 외쳤지만, 사실 세상을 향해 외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벗방’을 하네 마네 동생과 다툰 뒤 연락이 두절된 지 석달째가 되어서야 문희는 근희를 찾아 나선다. 독자들은 문희가 비꼬고 꾸짖는 모든 이유가 근희(의 존엄)에 대한 진한 사랑임을 안다. 문희만 모르다 문희만 말미에 알게 되니 그 지점 소설의 온도는 또 천연스레 쑥 올라간다. ‘인스타(인스타그램) 사기’ 피해를 본 뒤 템플스테이에 들어가선 산사의 정기 덕분인지 잘 먹고 잘 잔다고 운을 띄운 근희의 편지는 이랬다. “언니, 관종이 되려면 관종으로 불리는 걸 참고 견뎌야 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는 모르지? 한 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책도 아름답지만 내 몸도 아름다워. 문장도 아름답지만 내 가슴도 아름다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오히려 감추라는 언니가 이상한 거야. 언니는 왜 우리의 몸을 핍박하는 거야? 언니의 몸은 언니의 식민지야? 언니는 왜 우리 몸을 강탈의 대상으로만 봐?” 동생이 존엄을 수호하려는 방식으로, 젊은 자매지간도 이해 못 할 시대격차가 생겨난 결과라 해야겠다. 다만 근희에게 “죄책감이 1그램도 없”듯 문희 또한 꼰대의 ‘죄책감’보다 동생을 드러내 응원함으로써 이해가 모색된다. 마침내 근희의 유튜브에 댓글 달길 “…나의 동생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는 이서수가 지난해 말 펴낸 중편 단행본 <몸과 여자들>에서 외부의 시선을 내면화해 제 몸을 타자화하는 엄마 미복의 시대를 전복함은 물론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던 1983년생 ‘나’의 태도와도 구별되는 것이다. 몸의, 몸을 위한 변증법적 접근이 지속되는 형국. 실상 작품 여럿을 관통하는 주거, 노동, 젠더 문제 또한 본질적으로 섭생할 몸, 거처하고 안식할 몸에 대한 욕망으로, 이서수의 동시대 감각을 잘 드러내 준다. 그중에서도 주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고통과 분노는 너무도 촘촘하고 핍진하여 ‘문학적 실태보고서’라 해도 억지스럽지 않다. 고립된 이들이 그립던 이들을 만나, 나직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사영아, 난 요즘 집이 사고 싶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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