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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생명 없는 바다를 맞이하겠는가

등록 2023-03-24 05:00수정 2023-03-24 09:58

음악 없는 말

윤혜지 지음 l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수록(자음과모음, 2023)

날씨가 심상치 않다. 미세먼지 농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생활을 위해 매일 살펴야 하는 날씨가 여느 해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기후 생태계 위기’에 대한 말들을 자주 접하는 때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를 ‘진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될 대로 되라’ 식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기후 문제, 환경 문제의 경우 특히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제대로 가져가기도 전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고 쉽게 단정 짓고 손을 놓아버리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윤혜지 시인의 시를 읽다가 말에 생동감을 더하는 성질이라 할 수 있는 ‘음악성’이 사라진 말들로 빚어진 메마른 미래에 대해, 생명력이 사라진 바닷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물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람들// 곧 멸종되는 조개를 줍는다// 혹은 죄악 혹은 돌과 나무조각들// 모든 것은 제자리에 두고/ 탐색/ 작은 것들을 옮겨 담는다// 모래를 밟고 서서 물을 바라보는 건 낡고 근사하다 첫눈에 대해 말하는 노인들 같다/ 계절이 시작되면 그들은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상하지, 오래된 사람들은 늘 처음을 말하고// 조개 줍는 사람들 곁에 앉아 조개에 붙은 모래알을 털어냈다 해안가 침식이 심각합니다 너도나도 모래를 퍼가서요 멸종은 조개가 아니라 모래에게 도래한 것 같아요//…// 살아 있는 것을 골라 따뜻한 국물 속에 넣고// 죽은 것의/ 숨구멍끼리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야지 생각했지만 곧 잊혔고, 모두가 물가에 있었던 기억마저도 쏠려가고, 수심이 깊어져 이제 아무도 조개를 줍지 못할 곳까지 모래는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빈 곳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그런 적이 있었지 하기도 전에 각자가 멸종되고// 무너지는 것도 반복이라고// 노인들도 죽고 이제 눈 이야기 해줄 사람도 없다 처음을 발음할 사람도”(‘음악 없는 말’ 부분)

바닷가를 거닐던 사람들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 시는 “곧 멸종되는 조개”, “침식”되는 “해안가”, 사라져 가는 “모래”로 시선을 옮겨 간다. 눈앞에 펼쳐진 눈 내리는 바닷가는 얼어가는 땅과 얼지 않는 물이 경계를 이루며 일견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는 것 같지만, 얼지 않는 물의 깊은 한가운데에서는 모래가 삼켜지고 있으니, 이 풍경은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선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때 이런 풍경을 지구가 품고 있었다는 기억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소거를 향한 움직임만이 일어난다. 어쩌면 시는 뭔가를 “하기도 전에 각자가 멸종”을 택할 때 다가올 미래의 한 풍경을 우리에게 발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떠올리는 일에 중독될 때, 삶에서 처음을 발음할 기회는 영원히 박탈될 거라고.

변화가 쉽게 오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지만,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함부로 여기는 것 내지는 변화를 의심하느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겪어온 변화의 순간들을 모른 척하는 것 역시 미덥지 못한 발상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어민들의 절규가, 제주 제2공항 개발을 내세워 파괴되고 있는 동식물의 터전으로부터 비명이 들리는 지금은 어느 변화의 방향성에 힘을 보탤지 진지하게 택해야 할 때이다.

양경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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