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북토크를 한 지 보름쯤 지났다. 이번에는 장일호 <시사인> 기자가 쓴 에세이 <슬픔의 방문>을 가지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우리 서점은 용인 동백지구에 있는데, 동백 주민들은 물론이고 서울, 안양, 과천, 심지어 전라도 곡성에서도 온 참가자가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모았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의 북토크에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여기 모이는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람들이다. 참가자 중에 갓 스무 살이 된 사람이 있었다. 책에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에서 인용한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리는 그가 말을 다 이을 때까지 안으로 밖으로 함께 울어주며 기다렸다. 예순이 넘은 어떤 사람은 스무 살이었던 자기를 끄집어낸다. 먹고사느라 바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순간을. 한 사람은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며, ‘암환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했다. 몇 사람이 또 눈물을 닦아냈다.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이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믿기지 않겠지만 동네책방에서는 자주 있는 일.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는 자주 운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반달서림’은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 2020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모두가 몸을 사리며 극도로 조심하던 시기, 나는 작은 공간이 주는 위로의 힘을 믿었다. 우선 나부터도 다섯 살 난 딸과 갈 데가 없으니 책이나 실컷 읽으며 팬데믹 시기를 지나가야겠다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한 매출 급감 같은 건 없었다. 비교치가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돈을 벌 거라는 기대는 아예 없이 시작한 일. 그래도 손님이 너무 없었다. 도보 10분 거리에 사는 동네 사람이 책을 택배로 주문하기도 할 만큼, 그렇게 조심하던 때였다. 10분만 걸어가면 되는데, 내가 5분 걸어가서 택배를 보내면 한나절 걸려서 경기도 어느 곳 물류허브에 도착하고, 분류된 택배가 다시 용인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코로나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탄소 발생을 줄여야 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의 집 앞까지 찾아가는 ‘문고리 배송’을 여러 번 했다.
작은 공간이어도 책을 팔아 공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점을 열기 전 나는 포르투갈어 강사로 십수 년을 일했다. 번역도 간간이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고정비를 메울 수 있었다. 살면서 ‘밤샘번역’을 가장 많이 한 시기가 바로 서점을 연 후 1~2년이었다. 그렇게 버티며 사람들을 만났다. 꾸역꾸역, 고집스럽게.
우리 서점은 자타공인 모임 많은 서점이다. 정기적으로 온라인 시 필사 모임, 그림책 모임, 시 창작회, <녹색평론>과 생태서적 읽기 모임, 우쿨렐레 클래스, 바이올린 연주자가 진행하는 클래식 독서모임, 한 달에 한 권 소설 읽기를 하고 있다. 특히 시 창작회는 3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한 해 동안 시 창작회를 진행한 후 시우(詩友)들의 시를 모아 자체적으로 문집도 만든다. 그리고 비정기적으로는 월 1~2회 북토크나 시 낭독회, 계절 음악회를 연다. 매일 모임을 진행하는 것 외에 지역 도서관에 도서 납품도 한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 각종 서류작업에 머리가 복잡하고, 무거운 책을 나르느라 그야말로 씨름을 한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시를 한 편씩 읽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시를 읽고 쓴다는 것은 단순한 책읽기나 글쓰기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 <바깥은 여름>과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이다. 장일호 기자의 추천 책이다. 물론 원래도 읽고 싶어 관심을 가졌던 책이지만, 이제 ‘아는’ 사람이 된 그의 추천을 받아 읽고 있다. 이 사람의 겹과 두께, 결을 다시 느끼면서. 이제 보름 후면 또 다른 작가를 초청한다. 자립준비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때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용인/글 유민정 반달서림 책방지기, 사진 선재(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