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개최된 IBBY 국제총회에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는 이수지 작가(가운데). KBBY 제공
그림책은 그림과 짧은 글로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림만으로도 세대를 잇고, 국경과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감동과 상상력을 안겨준다. 디지털 환경에서 유행인 짧은 영상(숏폼 콘텐츠)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림책이다. 짧은 시간에 완독이 가능하고, 그 메시지가 그림과 함께 마음에 스며드는 마술 같은 매체다.
최근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볼로냐 라가치상’에 이지연 등 한국 작가의 작품 4종이 선정되었다. 작년에는 이수지와 최덕규가 수상하는 등 지난 20년간 꾸준히 수상작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이 오른다. 한국 그림책의 세계적인 위상을 확인시켜 준 것은 스타 작가 백희나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2020)과 이수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2022)이다. 그들만이 아니다. 패기와 재능이 넘치는 젊은 작가들이 그림책에 승부를 걸고 있다.
출판시장에는 어린이 그림책만이 아니라 성인용 그림책과 고령자용 그림책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림책 출판사와 그림책방, 그림책 도서관과 그림책 카페가 각지에 생겨나고 있다. 이렇듯 성장하는 우리 그림책에 대한 국내외 주목도를 높이고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올해의 그림책 대상’(가칭)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그림책 문화의 토양이 만들어진 데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창작열을 불태웠던 선배 작가들과 경영난을 감수한 출판인들의 노고가 있었다. 특히 1976년에 첫 번째 그림책 전문 출판사를 만들었던 ‘보림’, 1990년에 최초의 그림책방으로 설립된 ‘초방책방’의 공헌은 새겨야 한다.
그림책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는 지자체들의 노력도 두드러졌다. ‘그림책도시’ 원주시는 그림책센터를 운영 중이며, 지난 2년간의 프리 비엔날레를 거쳐 올해부터 ‘그림책 비엔날레’를 개최한다.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 이상희 이사장의 열정이 맺은 결실이다. 전라남도 순천시는 옛 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멋진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개관을 앞둔 경기도 군포시의 ‘그림책 꿈마루’는 그림책 도서관이자 기록관, 박물관 기능을 수행할 예정이다. 전라북도 전주시는 지난해부터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을 개최하고 있다. 전국 대다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북스타트’는 아기의 성장 단계별로 어린이와 양육자에게 그림책 2권씩을 선물한다. 지난 20년간 이어진 ‘북스타트’는 한국의 그림책 생태계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지속 가능한 ‘케이(K) 그림책 시대’를 열기 위해 그림책 문화의 저변 확대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먼저 민간 기념일로 ‘그림책의 날’을 제정하여 그림책 작가와 출판사, 서점, 도서관, 시민이 각지에서 함께 어울리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그림책 납본 정보를 집계해 공식적인 그림책 발행 통계를 발표하면 좋겠다. 또한 원주시에서 발행하는 <한국 그림책 연감>에 해설을 붙여 영어판과 전자책으로 만들어 널리 공유하길 바란다. 나아가 매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민관 협업으로 추진하는 ‘책의 해’ 사업을 내년에는 ‘그림책의 해’로 지정하여 시민들이 그림책을 더 가까이할 수 있도록 참신한 사업들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