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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3년…대만 서점은 ‘홍콩 디아스포라’의 안식처

등록 2023-02-09 11:44수정 2023-02-10 02:48

타이베이 장제핑의 ‘페이디서점’ 곧 1주년
1주 출장 왔다 보안법 체포 위기에
대만 도피 4년째…“부모님도 몰라”
홍콩 2040대 서점서 망향·비전 나눠
대만 타이베이 시먼역 일대에 위치한 ‘페이디서점’ 앞 장제핑. 임인택 기자
대만 타이베이 시먼역 일대에 위치한 ‘페이디서점’ 앞 장제핑. 임인택 기자

타이베이 번화한 시먼(西門)역 일대에서 인적 드문 주택가 어둑한 골목으로 발을 들이면 돌연 흰 빛줄기를 만난다. 지난달 31일 저녁 7시께(현지시각), 이미 환한 간판 조명 아래 2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 좁은 골목을 메운 상태. 독립서점 ‘페이디서점’(飛地書店) 앞이었다. 날 비(飛), 땅 지(地), ‘나는 땅’(비지)이란 엔클레이브(Enclave)의 한자어로, 타국 안에 있으나 그곳에 속하지 않는 영토를 말한다.

정치 탄압을 피해 대만으로 도피한 홍콩인 장제핑(張潔平·40)이 운영하는 이 독립서점에서 밤새 전시와 홍콩 음식을 나누기로 한 날. 모인 이들 대개도 망명 중, 도피 중인 20~40대 디아스포라들이다. 나직한 대화들, 그러다 음식이 도착하니 터진 환호성, 작게.

이날 밤 만난 장제핑은 <한겨레>에 말했다. “중국이 고향이지만 홍콩으로 대학 진학해 직장 얻고 쭉 살았다. 자유와 누구든 포용하는 엔클레이브적 환경과 가치가 몸에 밴 채 성장했다. 그게 나의 홍콩이었다.”

그가 말한 이 과거형은 그 홍콩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법보다 적확히 상기시킨다. 올해 타국서 마흔을 맞은 장제핑은 “주변 지인들 20명 정도가 지금 감옥에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주일 대만으로 업무 출장(인터넷 플랫폼 사업) 온 뒤 돌아가지 못했다. 그 또한 돌아가면 체포될 신호를 여럿 감지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건이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할 순 없다. 다만 나는 액티비스트(적극적 활동가)도 아니다. 그저 홍콩을 기록한 사람일 뿐인데도 무서웠다.”

옷과 세간을 마련하고, ‘에어비앤비’에서 석달가량 머물다 아파트에 세 들어 살길 4년째다. 여느 타이베이 도시인처럼. “아직도 잠에서 깨면 ‘여기가 어딘가’ 할 때가 있다. 부유하는 배(floating boat)처럼.” 그는 눈물짓지 않았다. 웃옷을 들썩이며 “옷 몇벌이 전부였는데 이 재킷도 여기서 샀다”며 웃었다. ‘부모는 아시는가’ 묻자 “무남독녀”라는 장제핑이 또 웃었다. “대만에 자주 출장 오가는 것으로만 아신다. 너무 많이 아시면 오히려 위험해진다.” 그리곤 결국 무너질 듯 말했다. “어쨌건 홍콩에 있는 친구들은 감옥 면회도 가고 서로 대화도 나누는데 난 그들을 찾아갈 수도 그런 대화에 낄 수도 없다. 그게 가장 참담하다.”

장제핑이 페이디서점 내 전시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점을 들른 대만인이 최근 ‘飛地書店’이란 액자 2점을 써줬다고 한다. 임인택 기자
장제핑이 페이디서점 내 전시된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점을 들른 대만인이 최근 ‘飛地書店’이란 액자 2점을 써줬다고 한다. 임인택 기자

페이디서점(영문명 Nowhere Bookstore)이 위치한 타이베이 시먼역 일대 주택가 골목에 30명 정도가 모여있다. 대부분이 도피 중, 망명 중인 홍콩인이라고 했다. 임인택 기자
페이디서점(영문명 Nowhere Bookstore)이 위치한 타이베이 시먼역 일대 주택가 골목에 30명 정도가 모여있다. 대부분이 도피 중, 망명 중인 홍콩인이라고 했다. 임인택 기자

장제핑은 지난해 4월 서점을 이전 주인으로부터 대여받는 방식으로 전혀 다른 자신의 서점을 차렸다. 홍콩 민주화, 문학, 역사 등 ‘홍콩 사람’과 그들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위한 서적이 중심이다. 5평도 안 되어 보이는 좁은 공간. 페이디서점은 개점 1주년을 곧 맞고 대만독립서점문화협회도 익히 아는 디아스포라의 거점이 되어가고 있다.

“각각 새로운 환경, 위치에서 엔클레이브적 가치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홍콩 출생 누군가는 홍콩이 중국의 한 도시가 아니라 독립국가라고 생각한다. 중국을 제1고향으로 삼는 나로선 감히 다툴 생각이 없다. 중요한 건 나를 가르치고, 우리가 공유하는, 자유와 포용과 같은 홍콩 ‘스피릿’(Spirit·정신,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장제핑의 말대로라면 홍콩 국가보안법(2020년 7월 시행) 등에 의한 정치사회적 이유로 홍콩을 떠나 전세계로 퍼진 이들이 40만명이다. 영국에 첫번째, 대만에 두번째 규모로 몰렸다. 지상에 안착 못 하는 지상, 비지(非地)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장제핑은 “생계만 위해서라면 서점을 했겠는가?” 반문한다. 그 답은 장제핑을 만난 지난달 31일부터 2월5일까지 성황리에 열린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전시 내내 단연 눈에 띈 데가 대만독립서점문화협회·독립출판협회 공동 주최로 차려진 ‘독서시민’(讀字公民) 부스로, 주최 쪽 주강연장(주제광장)과 주빈국(폴란드) 부스 바로 곁에서 넓게 자리를 깔고 다채로운 강연과 행사, 네트워킹, 출판물 전시 등으로 줄곧 북적댔다. 여기서 만난 대만독립서점문화협회의 천룽하오(陳隆昊) 전 이사장은 “디지털, 대형서점 체인과 싸워야 하기에 독립서점 운영에 어려움이 크다”면서도 ‘빈자를 위한 사회과학서’만 주로 펴내는 출판업을 지속 중이고, 독립서점 싼위서점의 중상화(鍾尙樺)는 “전체 300곳 되는 독립서점 대부분은 지역 사회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강한 곳들”이라며 “서점이 가오슝(타이베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의 지방 도시)에 있는데 매달 5~6천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말한다.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 부스를 차려 많은 방문객을 맞은 독립출판협회 이사장 천샤민(왼쪽)과 가오슝에서 독립서점 싼위서점을 운영 중인 중상화. 천샤민은 오는 6월 예정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임인택 기자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 부스를 차려 많은 방문객을 맞은 독립출판협회 이사장 천샤민(왼쪽)과 가오슝에서 독립서점 싼위서점을 운영 중인 중상화. 천샤민은 오는 6월 예정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임인택 기자

협회 소속은 아니나 홍콩인들이 운영하는 독립서점만 3곳, 작은도서관이 한 곳 있다. 서점·도서관은 단지 불 켜진 콘크리트 ‘시설’이 아니라 책 속 진리를 불 밝혀 나누는 ‘시선’인 셈. 중국 정부가 정한 금서를 팔았단 이유로 2015~16년 5개월 독방에 갇혔던 린룽지(林榮基·광둥어로 ‘람윙키’) 역시 2019년 대만으로 망명, 대만 국립대 근처에 서점(코즈웨이베이 북스)을 차려 그 자체로 ‘홍콩 스피릿’을 불 밝히고 있다.

“린룽지가 서점을 차린 때도 2020년 4월로 곧 3년을 맞는다”고 기자가 말했다. “4월은 서점 하기 좋은 달인가 보다”며 장제핑이 웃었다. 그리곤 서점에 있다는 단 한 캔의 홍콩 맥주를 가져와 건넸다. 골목가에 앉아 1시간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서점 앞 디아스포라들은 더 늘어 있었다.

타이베이(대만)/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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