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Catherine Hélie © Gallimard, 레모 제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l 레모 l 1만6000원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의 2016년 작품으로 그가 올 10월 초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이미 국내 번역이 진행 중이었다. 수상 소식에 들썩이지 않고 불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백수린의 손을 거쳐 이달 독자와 만난다. 노벨상 선정 배경이거니와 아니 에르노의 글은 철저히 자신의 경험에 기거한다. 다만 자신과 자신의 지난 경험을 타자화하여 의식과 감정, 경험의 의미를 캐묻고, 나와 나, 나와 사회의 관계를 추궁한다. 장르가 무엇이든 자기고백적이므로 에르노의 작품들은 결부되기 마련이다. 농부 출신 아버지의 폭력성에 대한 회고 <부끄러움>(1997), 임신중절이 불법인 시대, 임신하게 된 스물셋 여대생의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다룬 <사건>(2000), 연하 유부남과의 불륜을 적나라하게 그린 <단순한 열정>(1991) 등은 한 여자의 생애 자체를 다룬 소설 <얼어붙은 여자>(1981)에서 모두 합수되어 바닥을 흐르거나 파도치는 격이다. 이처럼 문학적으로 복기되어야 할 주체로서, 젠더화된 여자의 시원이 바로 이번 작품 <여자아이 기억>이다. 한마디로는 1958년 18살 여학생의 첫 성경험담이겠으나, 아니 에르노의 경험담이질 않은가. 작품에선 “지방의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서민 가정 출신”으로 “전화통화를 할 줄 모르고, 샤워를 하거나 목욕을 한 적도 없”으며 “가족이 속한 환경 외에는 경험해본 것이 없”는, 그래서 “지적인 중산층 보헤미안이 되길 열망하는” ‘그녀’가 꽉 막힌 가족을 생애 처음 떠나 참가한 방학 봉사 캠프에서 사흘 만에 22살 체육교사와 맺는-거칠고 일방적인-관계, 아니 그 자의반 관계의 감정과 기억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70대 여성작가에 의해 섬세히 “해체”된다. “기분 나빠하지 않고, 내 눈엔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1958년 여자아이”가 이후 오랫동안 자신을 억압하는 변증 불가의 연유로서 10대 후반의 욕망, 허위의식, 수치심, 미래에 대한 열망 따위를 최대한 거리 둬 드러내고, 마침내 껴안기까지 시간은 무척 길었다. 그것은 ‘기억’의 전쟁이기도 하다. 작가가 문학교수가 되고 상류계급과 결혼한 뒤인 1960년대 말 작가의 지난 일기장을 어머니가 불태운다. 작가 또한 오랫동안 “그 여자아이를 잊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의 욕망과 광기, 그녀의 어리석음과 오만, 그녀의 허기와 말라버린 피에 대해 써야만 한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책으로 쓰겠다며 “58”을 처음 활자화한 2003년으로부터 20년 만에 당도해낸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나고, 내가 바로 그녀라고.”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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