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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던 것’을 ‘보았다’고 말할 때”…강경아, ‘여순’ 슬픔을 시로 벼리다

등록 2022-10-19 07:00수정 2022-10-19 10:27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ㅣ시 부문 최우수상 강경아
“여순 사건 기록하고 알릴 기회…학술대회 찾아다녀”
여순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강경아 작가. 본인 제공
여순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강경아 작가. 본인 제공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순천시·순천문화재단·한겨레 주최·주관)에 조계희(58)의 중단편 소설 ‘아주 오래된 말’과 강경아(47)의 시 ‘동굴우화’ 외 9편이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탁환(소설가·심사위원장), 전성태(소설가), 서영인(소설가), 최재봉(기자), 나희덕(시인), 양경언(문학평론가)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심사를 열고 이렇게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할머니의 육성으로 기록된 회고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현실감이 역사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하고자 제정된 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한다”(‘아주 오래된 말’), “이제 ‘보았던 것’을 ‘보았다’고 말할 때가 되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동굴우화’ 외 9편)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 밖에 중단편 소설 부문에서는 ‘아버지 오신 날’(최난영),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손병현)이, 시 부문에서는 ‘화사한 제사’ 외 9편(이병철), ‘검은 비문 위에 앉은 흰새’ 외 9편(유지호)이 우수상을 수상했다.시상식은 오는 21일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전남 순천시 중앙로 93)에서 열리는 여순 10·19 추모제와 함께 진행된다. 수상작들은 작품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제대로 알아야 뭔가를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 여순 관련 학술대회도 찾아다녔고, 연구회에서 발간하는 논문, 연구서적을 죄다 찾아 읽었어요.”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강경아(47) 작가에게 여순 10·19 사건은 낯설지 않다. 여수에서 나고 자란데다, 여수작가회의 등 지역 예술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여순 관련 창작 작업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2013년 <시에>(시와 에세이)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강 작가는 두 차례 펴낸 시집 <푸른 독방>(2018), <맨발의 꽃잎들>(2022)에서도 여순 10·19 사건을 주제로 한 시를 수록했다.

그랬기에 이번 작업은 더 어려웠다. 익히 알려진 여순 10·19 사건을 낯설게 다시 보고, 새롭게 시적 형상화를 하려면 그동안의 작업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공모전 포스터를 보는 순간, 여순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왔구나 싶어 고무적이었어요.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지역 작가로서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전국 단위 공모전이 아니면 여순을 기록하고,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

귀한 기회인 만큼,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어떻게 해야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도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며 “공모전 준비하는 석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제 스스로를 방 안에 유폐시키고, 속된 말로 ‘오바이트’가 나올 정도로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썼다”고 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여순 관련 활동을 하며 접했던 유가족의 말들이 시에 혼을 불어넣었다. “가마니에 (시신을) 돌돌 말아 지게에 지고 가는 모습, 가마니 밖으로 빠져나와 허공에서 흔들리던 발목들…. 유가족이 전해준 목격담을 듣는데 가슴이 미어졌어요. 한 인간의 죽음이 어째 이토록 허망한가, 이렇게 죽음을 맞아도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 참담했죠.” 유가족의 목격담은 시에서 이렇게 표현됐다. “… 울엄니는 시커먼 송장 속에서 구리 가락지가 번뜩이갖고 찾고 울아부지는 어쩨 발목이 덜 타갖고 그걸 보고 찾았응게 을메나 다행인가잉…”(‘동백의 증언’)

74년이 지났지만 여수와 순천에서 여순 10·19 사건은 여전한 현재다. 그는 “어머니 세대는 물론이고, 동료 작가들 중에도 여순 사건을 불편해해 관련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당선작 중 첫번째 시 ‘동굴우화’는 그런 이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어머니, 어디선가 심장을 내리치는 북소리가 들려와요 어머니는 들리지 않나요”(‘동굴우화’) “여순이 지겹다는 사람들, 불편하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어요. 여순의 진실이,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 맺힌 소리가 정말 들리지 않느냐고요.”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건강 등 개인적인 이유로 임용고시를 중도 포기하고 문예창작지도사를 준비하려다 시를 만났다. 어린 시절 겪었던 혹독한 가난은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화에 저항하는 시”를 쓰게 한 동력이 됐다. “남도의 굿판처럼 풍자와 해학을 섞어 반생명적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시를 써왔어요. 그래서인지, 시를 쓸 때 판소리나 진혼가 같은 국악을 자주 들어요.”

강 작가에게 시란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5·18 광주, 제주 4·3, 팽목항, 미얀마까지 시대의 아픔을 보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고, 어느새 시를 쓰고 있어요.”

심사평

시 부문 공모에는 총 128명이 귀한 작품을 보내주셨다. 많은 분들이 여순 10·19 사건과 관련하여 아직 다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 앞으로 더 말해져야 할 감정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주셨다. 심사위원들은 여순 10·19 사건이 후대에 남긴 뜻을 새기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작품을 살폈다. 1차 심사에서 총 열네 분의 작품이 선별되었고, 2차 및 최종 심사를 통해 수상 후보로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은 네 분의 작품들이었다.

‘시집’ 외 9편은 응모한 총 10편의 작품을 마치 한 권의 시집처럼 ‘이야기시’로 구성한 작품들이었다. 여순 10·19 사건과 관련된 주요 장면들이 각각의 시편마다 ‘이야기시’ 특유의 서사적 전개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성에 치중하다 보니 시편마다 응축된 말의 힘이 부족하게 느껴져 최종 수상 후보에서 먼저 제외되었다.

‘철도원, 우리들의 장환봉씨’ 외 9편은 거대한 역사적 물결에 휩쓸리기 쉬운 한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소환해냄으로써 역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꿰뚫고자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주제의식이 앞선 나머지 수사에만 치중한 시어들이 반복된다거나, 상투적인 시구들이 등장하여 시적 감흥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화사한 제사’ 외 9편은 인간이 벌인 일들이 어떻게 전라남도 곳곳을 살풍경하게 만들었는지를 서늘한 어조로 전하고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화려한 목숨값이 울음의 시간들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가늠하는 시선은 미더웠지만, 간혹 시어를 벼려내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는 극적인 표현들로 감정을 토로하는 점은 단점으로 꼽혔다.

‘동굴우화’ 외 9편은 여순 10·19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음성을 생생하게 오늘의 자리로 불러와 사람들이 감당했던 슬픔의 결을 입체적으로 살려놓는다. 특히 ‘동굴 우화’에서는 “나서지 마라”며 쉬쉬하던 이전 세대와 “어디선가 심장을 내리치는 북소리”에 반응해야 한다고 여기는 후속 세대 간의 대화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면서 이제 ‘보았던 것’을 ‘보았다’고 말할 때가 되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함께 응모한 각각의 시편들은 다른 무엇으로도 희석시킬 수 없는 고통이 분명히 있었음을 존중하는 데에서부터 사건에 대한 의미부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면서, 오늘날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질문하고 있었다.

긴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역사적 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일러주는 ‘동굴우화’ 외 9편을 최우수상으로, ‘철도원, 우리들의 장환봉씨’ 외 9편, ‘화사한 제사’ 외 9편은 우수상으로 뽑았다. 수상하신 분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옥고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나희덕, 양경언(대표 집필 양경언)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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