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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가슴팍이 뜨겁다던 할머니…여순, 가족사 써야만 했다”

등록 2022-10-19 07:00수정 2022-10-19 10:28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ㅣ중단편 부문 최우수상 조계희
“쉰살 넘어 글쓰기 시작…수상으로 진실의 문 열쇠 꽂은 느낌”
여순문학상 중단편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조계희 작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여순문학상 중단편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조계희 작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순천시·순천문화재단·한겨레 주최·주관)에 조계희(58)의 중단편 소설 ‘아주 오래된 말’과 강경아(47)의 시 ‘동굴우화’ 외 9편이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탁환(소설가·심사위원장), 전성태(소설가), 서영인(소설가), 최재봉(기자), 나희덕(시인), 양경언(문학평론가)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심사를 열고 이렇게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할머니의 육성으로 기록된 회고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현실감이 역사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하고자 제정된 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한다”(‘아주 오래된 말’), “이제 ‘보았던 것’을 ‘보았다’고 말할 때가 되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동굴우화’ 외 9편)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 밖에 중단편 소설 부문에서는 ‘아버지 오신 날’(최난영),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손병현)이, 시 부문에서는 ‘화사한 제사’ 외 9편(이병철), ‘검은 비문 위에 앉은 흰새’ 외 9편(유지호)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순천부 읍성 남문터 광장(전남 순천시 중앙로 93)에서 열리는 여순 10·19 추모제와 함께 진행된다. 수상작들은 작품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공모전 포스터를 보는 순간 ‘계시’를 받은 것 같았어요. 내 역량과는 관계없이 이건 꼭 내가 써야만 한다는 숙명이 느껴졌달까요. 언젠가 때가 되면 가족사를 꼭 한번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조계희(58)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예순을 한 해 앞두고 전해진 제1회 ‘여순 10·19 문학상’ 중단편 부문 최우수상 수상 소식. 늦깎이 작가에게 날아든 당선 소식이 마냥 ‘경사’는 아니었다. “사촌 언니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많이 울더라고요. ‘네가 우리 집안의 한을 풀었다’고….”

그에게서 성취감보다 비애감이 더 짙게 느껴지는 건 이유가 있었다. 전남 순천 태생인 그는 외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등 가족 3명을 여순 10·19 사건으로 잃었다. 자라면서 본 외할머니는 한겨울에도 “여기가 뜨겁다”며 항상 가슴팍을 치셨고, 매일 소주 됫병(1.8ℓ)을 비우셨다. 행여 제복 입은 군인·경찰을 만날까 손녀 사는 서울도 평생 딱 두 번 다녀갔다. 어머니는 동사무소 같은 관공서에 일 보러 가는 걸 그렇게 무서워했다. 그러나 집안 어른 누구도 여순을 입에 올리지 않았기에 조 작가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고통에 몸부림쳤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기초 취재를 위해 여순사건 사진집을 보는데, 공황발작이 오더라고요. 논바닥이나 도로에 방치된 시신들, 체포된 사람들의 눈동자…. 우리 외할아버지도 이렇게 돌아가셨겠구나 싶으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요.” 그제야 알았다. 외할머니의 알코올 중독이 일종의 ‘자해’였다는 사실을. 차마 타인에게 풀 수 없어 오랜 시간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고통을 삭여 왔다는 것을. 외할머니의 자해(알코올 중독)는 최우수상 수상작 ‘아주 오래된 말’의 주요 모티브가 됐다.

응급약을 수시로 입에 넣으며 글을 썼다. 그렇게 절반쯤 쓰고도 엎어버렸다. 조 작가는 “너무 감정적으로 격해진 것 같아 다 들어내고, 더 중립적으로 쓰려고 했다”며 “공모 주제가 ‘생명과 평화’라고 해서 너무 쉽게 용서와 화해가 이뤄지는 일도 경계했다. 최소한 국가와 개인 사이의 용서가 너무 쉬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업주부로 살던 조 작가는 쉰살이 넘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성한 자녀를 출근시키면, 청소년들로 바글바글한 스터디 카페로 출근해 습작에 매진했다. 글쓰기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봉평, 청주, 진천 등 전국 팔도 백일장은 다 다녔다. 목포문학상 등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지만 이른바 ‘등단’은 아직 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삶의 무게 중심을 ‘쓰는 사람’으로 조금 더 옮겨가도 되겠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늦게 등단했지만 끝까지 썼던, 고 박완서 작가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역사의 질곡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여순 10·19 사건도 장편으로 다시 한번 써볼 생각이다. 그는 “이번 수상으로 막 진실의 문에 열쇠를 꽂은 느낌”이라며 “한 작가의 삶에 녹아든 시대의 아픔이 문학 작품으로 구현됐을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을 써내고 싶다”고 했다.

심사평

‘여순 10·19 문학상’ 중단편 소설 부문에는 총 100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여순 10·19의 진실, 생명과 평화’라는 공모 주제에 걸맞게 여순 10·19라는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여순 10·19 사건을 대하는 문학적 진지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주제의식이나 문학성의 차원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기록된 사실의 조합, 혹은 관습적인 회고에 그친 소설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작가의 관점, 특히 현재성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공모인 만큼 해를 거듭하면서 여순의 역사적 진실과 현재적 의미에 대한 탐구가 더 깊어지리라 기대한다.

고심 끝에 ‘아주 오래된 말’을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구성이 다소 느슨하고, 할머니의 가족사에 얽힌 갈등이 너무 쉬운 화해로 귀결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육성으로 기록된 회고에서 느껴지는 진정성과 현실감은 구성과 결말의 아쉬움을 뛰어넘었다. “역사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하고, 여순 10·19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자” 제정된 문학상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소설이었다.

우수상으로 선정한 ‘아버지 오신 날’,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은 단편이라는 형식에 소설의 주제를 잘 압축한 작품들이다. ‘아버지 오신 날’은 어린 아들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아버지의 실종을 겪는 어린 아들의 그리움이 빚어낸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비극성을 더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은 특별법 통과가 결정된 날 하루로 소설의 구성을 압축하면서 축제와 같은 신명이 연출되었다. 인물들의 입말이 부자연스럽고, 장거리의 농담이라고 치더라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언어들이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적 실패와 아내와의 불화로 실의에 빠진 인물의 귀향이 ‘조건 없는 환대’와 연결되는 장면은 여전히 현재성으로 살아 있는 여순의 정신을 느끼게 해주었다.

과거사의 진상 규명은 역사적 사건이 과거의 것으로 묻히거나 잊혀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사는 언제나 현재의 것이다. ‘여순 10·19 문학상’이 아직 온전히 복원되지 못한 여순 10·19 사건의 진실을 매해 새롭게 조명하고 탐구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김탁환, 전성태, 서영인, 최재봉(대표 집필 서영인)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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