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듯, 책방을 찾아주는 당신들 또한 그러길 바랄 거라는 기대로 책방이라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삶을 시작했다. 5년 전 나와 짝꿍이 가족들에게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책방을 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세상에 대해 어렵게 얻은 믿음 때문이다.
책방이라고 하기도 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을 꾸준히 찾아주는 이들은 나와 같은 젊은 여성들과 성소수자 친구들, 그리고 지역에서 인권운동과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 친구들이다. 이들의 요구와 아우성으로 지금의 책방의 큐레이션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삼스럽지만 이 작은 책방은 이들이 없었더라면 명맥을 잃고 자취를 감추었을 게 분명하다.
우리들의 젊은 시절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한민국에서 가진 것이 많은 뛰어난 이들과 줄곧 공정할 수 없는 ‘완벽한 경쟁’을 펼쳐왔다. 빈손이라면 분투하는 마음으로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경쟁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는 모두는 사실 알고 있다.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이들이 하나같이 공정하다고 말하는 이 사회의 경쟁은 공정한 게임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인생이 줄곧 겁이 난다. 늙어빠지고 아둔한 육신으로 낙인찍혀 소외 받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기 전에, 줄곧 다니던 직장이 사라지거나 내쳐지기 전에 우리들은 아직은 쓸 만하다고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들은 폐기처분 될 것이다. 폐기처분 된 인생은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단기계약직을 전전하다 내쳐져 언젠가 비루하고 쓸쓸한 늙은 육신으로 삶을 종결지을 테니까.
이 사회가 용인하는 쓸모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젊은 육체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이상을 심어왔다.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강인한 육체와 무엇이든 척척 알아듣는 똑똑함, 눈치껏 움직이는 사회성, 이 모든 것들을 갖춘 뛰어난 인간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과 좌절감은 루저들의 몫이 된다. 그리고 뛰어난 자들과의 적응에서 실패한 이들은 사회의 끝에서, 내가 사는 지역의 끝에서, 인정받는 일터의 변두리에서 만난다. 이곳에 모여든 이들은 수많은 위험과 차별, 실패와 좌절의 상흔으로 커진 증오의 화살로 서로를 무시하고 혐오하고 겁박한다.
실패자 체험, 낙오자 체험이 응당 청춘들이 겪는 시련인 것처럼 말하는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정한 경쟁의 구도를 만들고 있다고 항변하며 공정과 성공의 프레임을 직조하고 있다. 그 구조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들은 우리 자신을 혐오하고 미워하게 만들며 그게 너의 참모습이라고 우리를 가스라이팅해왔다.
이런 세상에 낙오자들을 위한 몫은 없을 것 같지만, <공정 이후의 세계>를 보며 ‘급진적 자기돌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될 가능성을 더듬는다. 공정 이후의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건 나를 품어주는 공동체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귀여워하고 때론 안쓰러워해야 한다.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쑥스럽게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돌보려 할 때 비로소 가능할 테니. 사랑하기가 잘 안된다면 경쟁이 심어놓은 성공과 구원의 환상으로 상처 입고 각박해진 나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불공정한 사회가 숨겨놓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이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게 다일지도 모른다.
전주/글·사진 김선경 책방토닥토닥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