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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관계로 수놓고 있는 우리의 시절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19 09:47

우리 책방은요달팽이책방
달팽이책방 전경.
달팽이책방 전경.

독립서점, 동네서점, 책방, 서점 등 이 공간을 부르는 이름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서점보다는 책방이라 불리길 바라며, 굳이 고르라면 동네서점이 이곳 ‘달팽이책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2014년 겨울, 포항 효자시장의 변두리 골목 안에 책방을 열기로 했을 때 내가 꿈꾼 것은 서점의 탈을 쓴 커뮤니티 문화 공간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십여 년을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 책방을 열기로 했을 때, 서점이나 카페, 작업실 단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한데 섞기로 했는데, 그 장소가 꼭 포항이어야 했던 이유는 십 대 시절 나를 숨 쉬게 해준 고향의 어느 문화공간에 대한 강렬한 기억과 고마움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비슷한 갈증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랐고, 책을 통해서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 년을 버틸 수 있을까 싶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자리에서 여덟 해를 보내는 동안 매일의 시간을 딛고 새로운 관계와 배움이 뻗어간다.

달팽이책방의 독립출판물 서가.
달팽이책방의 독립출판물 서가.

달팽이책방은 인문학 도서와 독립출판물을 함께 취급하는 서점이자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이다. 북토크,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이지만 여덟 해 동안 가장 성실하게 해온 프로그램은 독서 모임이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모여 시작한 독서 모임이 이제는 일곱 개 남짓 운영되고 있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손님이 다음 날에는 책을 구입한다. 책방과 함께 사계절을 보낸 손님은 이제, 삶의 한 시절을 이곳에서 머문다. 이런 인연이 모여 때로는 손님이 제안한 독서 모임이 새롭게 생겨나고, 재주 있는 손님은 ‘원데이 클래스’ 강사로 데뷔하거나 책방 한쪽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생애 첫 전시를 열기도 한다. 자신의 시간과 안목, 열정을 나누어 와인 모임이나 맥주 파티처럼 특별한 행사의 호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의 현장을 기록하는 또 다른 손님은 책방 신문인 ‘달팽이 트리뷴’의 기자가 되어 우리의 시절을 글로 남긴다. 매월 발행하여 전국 동네서점에서 무료 배포하는 이 신문은 어느덧 76호를 맞이했다. 책방을 열고 한두 해 동안은 손님이 참 없었다. 오늘 온 손님이 조금 더 자주 와 준다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지금은 안다. 책방은 매주 오는 손님만큼이나, 한 달에 한 번 오는 손님, 계절에 한 번 오는 손님, 해마다 오는 손님, 또는 당신의 한 시절에 잠시 들르는 손님, 이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속도와 보폭으로 만나고 헤어지기에 우리의 시절은 소중하다.

달팽이책방의 단행본 서가.
달팽이책방의 단행본 서가.

8년 전 누군가 내게 당신은 책방을 열 것이며, 이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나는 믿었을까. 사계절이 여덟 번 반복되었지만 어느 하나 같은 계절은 없었고, 오직 서로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다정한 걸음으로 관계는 생겨나고 이어졌다. 서로의 목을 축이는 하루치의 격려와 기쁨, 나누어진 슬픔이 없었다면 우리의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혼자 책방을 운영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는 혼자서 책방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항/글·사진 김미현 달팽이책방 대표

달팽이책방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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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책방의 전시실 풍경. 책방 손님 김효정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달팽이책방의 전시실 풍경. 책방 손님 김효정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달팽이책방 야경.
달팽이책방 야경.

달팽이책방 공연 풍경. 가수 종코님의 공연 모습.
달팽이책방 공연 풍경. 가수 종코님의 공연 모습.

달팽이책방의 북토크 모습.
달팽이책방의 북토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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