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일지
이용훈 지음 l 창비(2022)
이용훈의 첫 시집 <근무일지>에는 2022년 현재 한국 사회를 채우는 노동 현장의 살풍경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살풍경’이라고 했거니와 시는 아파트 건설 공사, 하수구 오물 청소, 터미널 짐 나르기, 자가 격리자들의 쓰레기 수거, 재개발 철거 작업, 가구 본드 접착, 식품 공장의 세척 등등의 ‘일’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벌하게 그린다. 이들은 현장의 위험도나 대가를 따질 새도 없이 온몸으로 뜨겁게 일한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생존권을 보장하는 노동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소식이 잦은 요즘, 시는 ‘달리 상상하지 말고 보아라, 여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럴 때 이용훈의 시는 그 자체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보고가 된다.
“후끈한 열기가 응어리져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사람 몽고 사람 때로는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무리 지어/ 어두컴컴한 모텔 복도를 이리저리 걷습니다 당신들은 타월을 충분히 달라는 요구도 시원한 물이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는지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합니다/ 세워지는 모든 존재들은 당신들의 두 손에서 체결되는데/ 당신들이 머무는 객실은 축축하고 마르지 않는 속옷과 수건들로 가득합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채 쓸어내고 훔쳐도 솟아나는 돌가루와 체취만이 방 가득 흐트러져 있습니다/ 눅눅한 바닥은 눅눅함으로 널브러짐은 널브러짐으로/ 노동자가 머물고 있는 객실은 여전히 구겨지고 흐트러져 있어서 당신들이 떠나는 그날까지 나는 당신들이 묵고 있는 객실의 청소를 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끝내지 못한 나의 노동은 당신들이 짊어지고 나르는 화강석보다 가볍다 생각 들고 당신 수첩에 끄적인 인력사무소 목록 한줄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수건과 생수 필요하시면 테이블 위 인터폰 0번 눌러주세요 객실에서 빨래는 가급적 삼가주시고요 수건의 얼룩 물어보니, 시멘트 물이라네요 지워지지 않아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 나갈 때 가지고 나가지 말아주세요 용품 관리 못한다고 모텔 사장님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미안한 노동’ 부분)
최근 모텔과 여인숙 같은 숙박 시설에는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산다. 시에서 화자는 그곳을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시설을 관리하는 곳을 살림터로 삼은 이들의 자취에 말을 건다. 사회를 꼿꼿하게 ‘세우는’ 역할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눅눅하고’ ‘널브러진’ 형태로 여겨지는 이들의 상황을 그이들의 언어가 번역되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어두컴컴한 모텔 복도”에서 느낀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어떻게 내력을 갖춰 가는지를 살피면서, 화자는 자신이 “미안한 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삶의 흔적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상대를 ‘주’가 아닌 ‘객’으로만 대하는 자신의 노동이 면구스러워지는 것이다. “당신”을 잘 보살피는 일이 당신을 살린다기보다는 또 다른 위험 현장으로 밀어 넣는 일이 될 것만 같아서, 혹은 “후끈한 열기가 응어리”져 있는 일하는 곳이 삶 자체의 안전을 약속받지 못하는 곳임을 이미 알고 있어서.
시는 염치를 챙기면서 ‘일하는 사람’을 대접하듯 그린다. 염치를 아는 것.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정부가 챙겨야 할 이것을 시가 챙기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