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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에 생각하는 어린이 책 생태계

등록 2022-04-22 05:00수정 2022-04-22 09:21

[한겨레Book]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1975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어린이날(5월5일)이 처음 시작된 것은 엄혹한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2년이었다. 33년의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방정환이 24살이던 그해 ‘천도교 소년회’ 창립 1주년 기념으로 ‘어린이의 날’(5월1일)을 제정한 것이 어린이날의 출발점이다. 당시 배포한 전단지 제목이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였다.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4월3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5월1일의 어린이날 재현 행진, 그리고 여러 단체들이 주최하는 학술포럼, 어린이청소년영화제, 동화 들려주기, 마당극, 음악회, 연극 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동화 100년 전시회의 아동문학 100선 공개, 아동문학 축제 ‘어린이 문학 주간’, 파주출판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어린이 책잔치에서의 100주년 기념 동시화전 등도 기대된다.

방정환은 당시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던 아이들을 어린이라 명명하고, 어린이의 인권을 사회적으로 드높이기 위한 어린이 문화운동을 힘껏 펼쳤다. <신청년>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고, 동화 창작과 번역을 하며 한국 최초의 동화집을 펴내는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도 펼쳤다. 우리 어린이책 역사의 뿌리에 방정환이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 방정환 사상의 고갱이인 ‘어린이 해방’은 어린이책과 관련하여 얼마나 충족되었을까. 오늘날 어린이책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은 1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해졌다.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읽을 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어린이는 드물다. 하지만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새터민, 장애인, 난독증을 겪는 아이 등 여전히 책과 거리를 둔 어린이가 적지 않다. 나아가 어린이책 창작자들이 창작에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 전문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학교도서관과 동네 작은 도서관, 고루한 고전 명작 권장문화 등 개선이 필요한 일이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부모 세대가 어린이에게 학습 목적으로 독서를 강제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나친 조기교육과 과잉 독서로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이 책과 관련해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점이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다’(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일까. 시대 변화와 동떨어진 성적 위주 입시 제도의 중압감 속에서, 어린이의 정신적 성장에서 필수 영양소인 책 읽기를 즐거이 하지 못해서 생기는 심각한 문제들을 기성세대는 책임도 못 지면서 방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23년에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선언을 했다. 서울 수운회관(천도교 중앙대교당) 앞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표지석 뒤에는 방정환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고, 삼십 년 이상 전의 옛사람이 어린이를 잡아끌지 말며, 낡은 사람이 새 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야 세상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갈파했다. 부디 어린이날에는 어린이가 읽고 싶은 책과 만나도록 하고, 마음 가는 대로 읽으며 생각하고 기뻐할 시간을 선물할 일이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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