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양경언의 시동걸기
정다연 지음 l 창비(2021) 미국의 작가이자 현장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여성이 당하는 갖은 폭행과 성폭력 사태에 등장하는 협박 중 하나로 “말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를 꼽는다(리베카 솔닛, 노지양 옮김,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창비, 2021, 141쪽). ‘말하지 말라.’ 이는 지금 사회가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 이들을 단속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보장받아야 할 자유와 평등과 안전이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성소수자라는 사실만으로, 장애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어린이라는 사실만으로, 출신국가 및 인종,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그러한 사회의 문제가 노출되지 않도록 이들의 움직임과 말할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제한한다. 부당한 차별적 상황이 발발할 때 숱한 ‘개인’은 실제로 ‘너의 안위를 위해서’라며 ‘말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지침 혹은 암묵적인 압박을 받는다. ‘구조적 성차별’은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제거하고 그 이야기의 힘을 유지하려는” 이들 역시 “제거”하려 들면서(앞의 책, 같은 쪽) 유지된다. 왜 하필 ‘말하지 말라’는가? ‘말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폭력적인 협박이 통하는 사회는 역으로 그 단속하려는 말 자체를 하는 행위, 강요된 침묵을 깨는 행위가 불러일으킬 변화가 상당한 사회임을 뜻한다. ‘그 말’을 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어린 암탉아// 삼일에 한번 매질을 당하는 바싹 마른 북어 같은 소녀야 자랑스럽게 세 번 울어라// 그러면 집안이 망하고 온 세상이 다 망할지어니// 밤길 나설 때// 한줌의 진실을 머리에 감고 집을 떠나는 소녀야 어서 자라라 어서 자라// 세 여자가 한곳에서 만나면 단검처럼 맞댄 진실이 전장을 베고// 적도에도 기적처럼 눈이 내려// 체스판처럼 쪼개진 영토도 눈발에 덮여 모두 다 사라진다 신이 만든 실패작아 따먹힐 작은 열매야 어서 자라라// 어서 자라 더 큰 실패작이 되어라 땅을 향해 내리꽂히는 낙과가 되어라 네가 입을 열면 열 때마다 접시가 깨지고 서리가 내리고 온 세상이 부끄러워 망신할 것이니// 그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짐승아 악마가 빚은 천사야 더 크게 울어라 십리 밖에서도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대지가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고 온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서로의 이마와 이마를 맞대고 기꺼이// 웃어라 암늑대는 죽어서도 제 말을 하면 다시 찾아와 자신의 무리를 끝까지 지킨단다 살아 있는 딸들의 울음을 찾게 하소서 어둠 속을 헤치며 십리 밖으로 달리고 또 달린단다”(정다연, ‘세번 울어라’ 전문) 여성들의 말과 행동을 단속하기 위해 ‘~하지 말라’고 전해 내려오는 옛말의 의미를 훌쩍 뒤집는 시다. 가령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은 시에선 오히려 누군가의 울음을 봉인해야만 겨우 유지되는 집안이라면 “자랑스럽게 세 번 울어” “망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전환된다. 그러니 “소녀”는 “더 크게 울어”야 한다는 것. 살아 있는 존재로서, “십리 밖에서도”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더 크게 울” 때 망하는 것은 누군가의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므로, “더 크게 울어” “대지”가 흔들리고 “땅”이 갈라지게 해야 한다는 것. 함께 “이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의 입을 열고 나눈 말로 계속해서 서로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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