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양경언의 시동걸기
슬픔을 다루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는 책들
삶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진짜 이야기’ 들려줘
슬픔을 다루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는 책들
삶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진짜 이야기’ 들려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허현숙 옮김 l 민음사(2021) 새해를 맞이해 여섯 살이 되는 조카가 그림책을 읽던 중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서럽게 울까 싶어 슬쩍 살폈다. 책 속에는 주인공의 소중한 친구가 기대했던 자리에 있지 않고 오히려 사라져버린 상황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 눈물에 담긴 마음을 알 것도 같아 잠자코 있던 내게 조카는 여전히 엉엉 울며 물었다. “왜 세상에는 슬픈 책이 있는 거야?” 그러게, 왜 세상에는 마음을 아프게 하고, 몸을 힘들게 하는 (눈물 흘리는 일에 드는 체력적인 소모는 상당하다. 울 때, 우리는 온몸으로 운다) 슬픈 이야기가 있는 걸까? 왜 어떤 책은 슬픔을 다루는 일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할까? 슬픔 역시 세상을 이루는 소중한 일부여서일 것이다. 혹은 어떤 깨달음은 슬픔을 통해야만 찾아오기도 한다. 삶에서 사수해야 하는 건 미디어의 온갖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희희낙락한 순간만이 아니다. 살아 있으므로 느끼는 ‘진짜 이야기’는 슬픔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슬픔은 피해야 할 게 아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겐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총 열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기도 하다. 작가가 1981년에 발표한 시에는 ‘진짜 이야기’의 정체를 탐문하는 시가 나온다. “1/ 진짜 이야기를 청하지 마라./ 왜 그게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펼치는 것이거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항해하며 지니는 것,/ 칼, 푸른 불,// 행운, 여전히 통하는// 몇 마디의 선한 말, 그리고 물결.// 2/ 진짜 이야기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그것은 내가 결코// 가진 적 없는 어떤 것. 이동하는 빛/ 속에서 검은 나뭇가지들이 엉킨 것,// 소금물로/ 채워진 흐릿한// 내 발자국, 한 움큼의/ 조그마한 뼈들, 이 부엉이의 죽음./ 달, 구겨진 종이, 동전,/ 옛 소풍의 반짝임,// 연인들이 모래 속에/ 백 년// 전 만든 구멍들, 단서는 없다.// 3/ 진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 있다./ 어지러운 색깔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같은,// 대리석 위의 마음 같은, 음절 같은/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진짜 이야기는 악랄하고/ 다층적이며 결국// 진실하지 않다. 왜 너는/ 그것이 필요한가? 진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청하지 마라.”(‘진짜 이야기’ 전문) “진짜 이야기”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답으로 쥐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어떤 순간을 직접 겪어나가는 동안 맞이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사라지기도 하는 것. 누군가에게 속한 채 반짝였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에게도 파악되지 못하는 것. “폐기되거나 버려진” 자리조차 이 역시 진실의 한 형태임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 그러므로 엄연한 진실임에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도 한 것. 진짜 이야기는 하나의 표정, 하나의 표현만으로 쓰이지 않는다. 우물쭈물 중언부언하고 있는 내게 조카는 스스로 답을 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아, 슬픈 책을 만들었으니까 슬픈 책이 있는 거야?” 나는 조카의 그 말을 ‘이 세상에 슬픔이 있으므로, 슬픈 책이 있다’로 들었다. 어쩐지 요즘은 슬픔을 피하느라, 없다고 여기느라 거기에 담긴 ‘진짜 이야기’ 역시 놓치고 마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시의 말마따나 진짜 이야기는 청해서 만들어낼 게 아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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