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명단에서 빼내 선진국 명단으로 변경했다. 이 국제기구가 설립된 이래 리스트가 바뀐 것은 5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국가와 민족의 경사여야 할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한데, 정말 우리는 선진국이 된 것일까. 띠지에서 “GDP(국내총생산) 세계 9위,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된 것일까?”라고 묻는 컴퓨터공학자 박태웅의 <눈 떠보니 선진국>(한빛비즈)의 질문이 낯설지 않다.
‘선진국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는 문화, 학술, 출판의 교류와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를테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 연구자료 지원사업’도 그에 속한다. 해외에서의 한국에 관한 교육, 연구, 학술문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한국 관련 도서 및 시청각 자료를 해외 대학, 국공립 도서관, 연구소, 박물관 등에 지원한다. 신청 기관별로 200만원 정도의 도서구입비 한도 내에서 현물 자료를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 2020년에 9296부의 책을 37국 116개 처에 지원했다. 100여개의 지원처에 80부씩을 보급한 셈이다. 이 사업으로 2000년에 1만6158부를 해외에 보급했고, 2010년에는 59개국 290개 처에 2만2314부를 지원했었다. 즉 지원 규모가 10년 전, 20년 전의 절반 이하로 후퇴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해외 71개국 206개 대학에서 총 950건의 한국(어)학 강좌 운영을 지원한 것에 비하면 더욱 초라한 수준이다.
출판 지원도 마찬가지다. 한국 관련 외국어 저작물의 현지 출판을 지원하는 사업은 2000년 18건, 2010년 20종(7개 언어권)이던 것이 2020년에는 6개국 6종으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올해 예산이 약 1700억원인 이 기관에서 거의 생색내기 수준의 관행적인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예산 규모가 781억원이었으니, 예산 대비로는 책 관련 사업들이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셈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지구촌 한류 현황>이라는 자료도 발행한다. 외교부와 재외 공관의 협조를 받아 2012년부터 매년 전 세계 한류 현황을 조사 분석한 자료다. 2020년판은 총 4권의 책자에 109개국의 한류 현황을 담았다. 해외의 한류 팬(동호회원 수)이 처음으로 1억명을 돌파했다는, 으쓱해지는 성과도 담았다. 우리나라 국민의 2배나 되는 숫자다.
그런데 이 자료의 나라별 현황을 보면 한국어, 음악, 방송, 영화, 한식, 스포츠, 뷰티, 공연 분야 등이 상세하게 조사되어 있지만 ‘출판’은 당연하다는 듯 빠져 있다. 기관 이름이 비슷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매년 발간한 <한류백서>에 출판 분야가 포함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 기고로 만드는 <한류백서>와 달리 <지구촌 한류 현황>은 현지 공관의 협조로 생생한 정보를 담을 수 있기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국민들이 여권 발급 때 납부하는 국제교류 기여금을 재원으로 사용한다. 공공외교 전문기관을 표방하는 만큼 한국학 관련 출판물의 해외 보급과 국제 출판교류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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