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양경언의 시동걸기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장혜령 지음 l 문학동네(2021)
때때로 시가 무섭다 . 한 사람의 목소리를 잠시 들었을 뿐인데 내가 속한 곳이 어떤 데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돌아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 이를 두고 버지니아 울프는 “ 갑작스러우면서도 완전하게 그 속으로 침잠 ” 하게 만드는 “ 시의 영향력 ”( 버지니아 울프 , 정소영 역 , <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온다프레스 , 2021, 50 쪽 ) 에 지배된 것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소설에 비해 시는 단 한순간에 , 몇 되지 않는 말을 건네며 이전과는 다른 이후를 연다 ),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내게 ‘ 그게 정말인지 ’ 묻는 어떤 시의 취조 방식은 독자가 독자 자신만은 끝내 속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이어진다 . 이처럼 우리 삶 한가운데로 ‘ 쳐들어와 ’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는 일을 장혜령의 시가 한다 .
“ 빛은 잘 들어옵니까 // 이상하지 ,/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 그리고 /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 불꺼진 독방의 내부는 / 누군가 두고 간 / 볼펜 잉크처럼 캄캄하다는 거 ,/ 의도 없이도 흐른다는 거 // 처음 타본 비행기와 /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 // 그의 휘파람을 / 존경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 크고 두터운 손으로 , 아버지처럼 /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 그래 , 바람은 불어옵니까 //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 / 빨래를 솥에 넣었고 // 예수기도회의 붉은 자전거 옆에는 / 북경반점 오토바이가 // 모든 질문엔 / 전학생의 시점으로 / 생각했지 // 경도와 위도 선상에서 / 초조해질 때마다 / 별들 사이에 길이 있다는 건 , 더 확고해졌으니까 // 동료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 삼키는 연습을 하는 / 수배자처럼 // 배후가 없는 비밀이 몸속을 떠돌고 // 깡통 속엔 / 씹다 뱉은 성냥들이 / 붉게 차오르곤 했다 //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 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 들판 같은 책상 위로 /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간다 // 빛은 잘 들어옵니까 / 바람은 불어옵니까 // 이상하지 ,/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 // 어디선가 / 새들의 농담이 들리고 // 그의 내부를 바라본 것은 , 저 나무가 유일하다”( 장혜령 , ‘ 이방인’ 전문)
“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 묻는 “ 빛은 잘 들어옵니까 ” 라는 질문이 한순간에 “ 죄수에게 묻는 질문 ” 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 내가 사는 방은 안전하기보단 무엇이 갇혀 있는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이 된다 . 내가 머무는 이곳은 어디인가 . 혹 이곳에서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쭉 있어왔는데도 누군가 “ 내 머리를 쓰다듬 ” 는 데 만족해하며 있었던 건 아닐까 . 삶을 그저 그런대로 견디기만 하는 나는 누구인가 . 한편 , 시는 스스로가 낯설게 된 바에 더 멀리 가는 방법도 일러준다 . “ 빛은 잘 들어옵니까 ” “ 바람은 불어옵니까 ” 라는 질문 주위를 “ 전학생의 ” 심정으로 기웃거릴 때 , 이는 나를 이루는 것들 중 “ 가둘 수 없는 것 ” 은 무엇인지 헤아려보자는 권유로 바뀌어 들린다 . 나라는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는 “ 비밀 ”, 어떤 글이 시작할 때 품고 있는 “ 캄캄한 ” “ 볼펜 잉크 ” 와 같은 “ 빛 ” 이 이때 고개를 든다 .
자기 앞의 좁은 책상을 “ 들판 ” 으로 삼을 줄 알고 , “ 저 나무 ” 의 시선을 단 한번이라도 의식할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위대한 혼자이다 . 세상의 모든 한 사람 , 한 사람은 다 그렇게 할 줄 안다 . 이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위엄을 제 몸으로 증명하는 시가 때때로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도 될 것이다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