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시인의집
말이 책방이지 가짓수만으론 170여 종에 불과하고, 카페의 일정 부분만을 할애하고 있어 처음 방문한 분들은 공간의 정체성에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이곳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단골들에겐 익숙하지만, 초행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테다. 게다가 책의 구성도 대형서점에서조차 기피하는 시집이 80%인 반면, 산문‧소설‧그림책‧화집 등은 고작해야 20%에 지나지 않으니 대중성과도 거리가 있다.
시인으로 활동하는지라 동료 문인들이 서명해서 보내주는 신간을 비교적 재빨리 받아보는 홍복을 누리곤 하는데, 일독을 마치면 서가로 직행하는 대부분의 책과는 달리, 극히 일부는 곁에 머무르면서 무어라 자꾸 말을 걸어오곤 한다. 이를 여운이라 할까? 물론 후자의 경우가 입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시집 30부가 소진되기까지 평균 4년쯤 걸리던 초반과는 달리, 지금은 더디게나마 속도가 단축됐으며, 심지어 여기 없는 시집의 마중물 역할로 이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어떤 지원책으로도 회생시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들 하는 와중이니 기적이라고밖에.
동네책방이라곤 하지만 카페 수익 없이는 불가능해 아예 카페 이용자 전용으로 못박았다. 책방을 투어 목적으로 삼고 찾아오는 일부 여행자들로 인해 공간의 고즈넉함이 들뜨는 경우가 잦아져 고심 끝에 짜낸 방침이기도 하다. 비록 통장은 바닥이지만 창고에 쌓인 보유도서만큼은 남부럽지 않으니 자존과 자긍으로 삼고 살아가던 중, 올봄, 불현듯 신간을 들이지 않고도 독창적 기획이 가능함을 깨달았다. 기존 출판마케팅의 두루뭉술한 독자층을 구체화 세분화시킨 전략이 그것인데 의외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온라인 서점이나 특화된 대형서점처럼 수천 부 이상의 움직임이 있는 건 아니다.
기획부터 전달까지의 전과정에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을 5권 묶음, 30인 한정으로 진행하는데 저자의 친필서명은 기본이고, 청소년과 청년에겐 손글씨로 쓴 엽서와 시를 동봉한다. 이외에도 과부하가 걸릴 만큼의 정성을 쏟곤 하기에 그때마다 ‘이 일을 왜 하지?’ 싶다가도, 속속 전해오는 인사를 받노라면 어느새 온전해져 머릿속은 벌써 다음 기획을 구상하는 것이다. 일테면, 방금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받은 독자의 메시지가 그런 것인데 몇 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지독한 활자중독자였는데 몇 해 전 시력에 이상이 생겨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됐어요. 그러던 중 시인님이 운영하는 책방을 발견해 오랜만에 읽기에 심취했답니다. 이런 행복이 얼마 만인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책방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책방은 오래전부터의 꿈이었고, 나는 지금 그 꿈을 살고 있다. 그것도 이렇듯 나의 책 편애를 편애해주는 이들과 더불어. 그러니 앞으로도 기꺼이, 신나게 책!
글·사진/손세실리아 시인의집 대표
시인의집
제주시 조천읍 조천3길 27
instagram.com/cafe_poets_house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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