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2020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 전집 판매 안내. 누리집 갈무리
공공기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만큼 공공성 확보와 대민 봉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일부 공공기관의 출판 활동과 관련된 사례를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 기관에서 생산한 도서를 비매품은커녕 비상식적으로 고가에 판매하고, 도서의 원문 파일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는 곳들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준정부기관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정부 지원 수입(사업수입, 위탁수입 등 간접지원 포함)이 2020년에 4755억원, 2021년에 5305억원에 이를 만큼 막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트라는 <2020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를 도서는 9만원, 디지털 파일(PDF)은 7만5000원, 엑셀 파일은 37만원에 각각 판매한다. 종이책은 인터넷서점에서 10% 할인에 5% 마일리지를 적용해 판매하는데, 기관 홈페이지에서는 장애인 기업 확인서 증빙이 가능한 경우 팩스로 직접 주문하면 20% 할인한다고 공지한다. 현행 도서정가제 조항 위반이다. 홈페이지에서는 자료의 본문 파일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이 목적사업을 위해 수집하여 만든 자료를 유가로 고가에 판매하는데다, 도서 판매와 관련된 현행법까지 위반했다.
공공기관 중에서 유가 출판 활동에 가장 열심인 곳 중 하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이다. 출판 전담부서까지 두고, 기관에서 생산한 원고뿐 아니라 외부 원고까지 공모해 출판을 할 정도다. 이 기관은 2020년에 329억원, 2021년에 333억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았지만, 발행한 도서의 원문 파일은 공개하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 홈페이지에서는 판매처로 특정 인터넷서점 한 곳만 연결해 놓았다. 나아가 2020년 ‘세종도서’ 선정·보급 지원사업에서 이 기관이 펴낸 언어와 사회과학 분야 학술도서 2종이 선정되기도 했다. 세금으로 책을 펴내고, 다시 세금으로 그 책을 선정했으니 명백한 이중 지원이다. 민간 출판사 책이 선정될 기회까지 박탈했다.
다양한 문화재 관련 도서를 발행하는 한국문화재재단의 경우 정부 지원 수입은 2020년에 946억원, 2021년에 1068억원이나 된다. 이곳 역시 홈페이지에 도서의 디지털 파일을 공개하지 않는다.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렇게 지탄 받을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들은 비매품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가 판매 도서까지 친절하게 ‘원문 보기’ 서비스를 홈페이지에서 제공한다. 공공기관이 생산한 양질의 원고를 민간 출판사에 위탁하거나 협업하여 책을 펴내는 좋은 사례들도 있다.
공공기관이 발간한 도서에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비매품이든 유가이든, 단행본이든 정기간행물이든 홈페이지에 디지털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의 상업적 출판 행위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지나친 영리 추구 행위를 막고, 공공기관이 생산한 자료를 국민 누구나 접근하여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