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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

등록 2021-08-27 04:59수정 2021-10-12 09:52

[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책방이듬
오늘(2021.8.19.) 여기, 책방이듬 전경.
오늘(2021.8.19.) 여기, 책방이듬 전경.

저의 책방 사랑은 대학 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앞 책방에서 친구들과 책을 사고 함께 스터디하던 날들, 당시에도 책방은 책 판매만으로 운영이 어려웠던지 음반코너도 있었습니다. 저의 책방 개업의 꿈은 2015년 봄, 파리에서 싹텄습니다. 당시 저는 그곳에서 열리는 국제 시 축제에 초대받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오래된 책방 앞에서 시 낭독행사를 했습니다. 그 책방처럼 책도 팔고 예술행사도 하고 영화도 촬영하는 아름다운 문화예술공간을 꾸며보고 싶었습니다.

일산호수공원 앞에 ‘책방이듬’을 열었습니다. 2017년 초가을이었고 그해 시월 마지막 날에 김민정 시인을 초대하여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라는 제목으로 첫 문학행사를 했습니다. 햇수로 5년이 되는 지금까지 200회에 가까운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한 달에 두세 번씩 북 콘서트, 낭독회를 하고 음악모임, 독서모임, 그림모임 등을 꾸렸고 실제로 영화도 찍으니까 친구들이 저한테 미쳤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쳐야 미친다”며 미친 듯이 달렸는데, 오는 8월31일에는 시인 이재훈, 기혁의 ‘동네 시인들의 잡담회’가, 9월11일에는 문보영 시인의 북 토크가 열리니 놀러와주세요.
인문학 강좌가 열린 날.
인문학 강좌가 열린 날.

‘불광불급’이라고 했지만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최소한의 안정적인 공간일 겁니다. 죽자사자 달리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도 세상의 모든 책방지기들은 어떻게 하면 책방을 살릴 수 있을까 고심합니다. 동네 골목의 최소한의 쉼터, 작은 문화예술거점이 될 궁리를 한다는 거죠.

‘책방이듬’은 호숫가에서 오래된 주택가 사거리 모퉁이로 이전했습니다. 높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창고를 개조하여 새로 책방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훨씬 채광이 좋고 두 배로 넓어졌습니다. 책방을 좋아하는 오랜 손님들이 자신의 집 이사하듯 도와주셨고 책걸상과 전등, 책꽂이 등을 넣어주셨습니다. 소설이나 시 같은 얘기지만 사실입니다.
지난 3월에는 이산하 시인의 낭독회가 열렸다.
지난 3월에는 이산하 시인의 낭독회가 열렸다.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매주 모여서 창작 합평하는데, 이 작은 모임 이름이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나’입니다. 다소 거칠고 절박하며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이 이름은 제가 2018년 봄에 문득 지었습니다. 이 모임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첫 시집을 내게 된 청년도 있고 이달 초엔 한 문예지로 등단한 분도 계십니다.

오늘(8월19일)은 고양 사법연수원 국장님이 짧은 비평문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법원공무원 동료였던 고 최란주 시인의 작품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분의 유고시집을 내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딱딱한 법을 다루든 거리에서 품을 팔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시가 담겨있습니다. 세상에 시집이 더 많아지고 시집 파는 책방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2019년 유안진 시인을 초대해 열었던 일파만파 낭독회 포스터
2019년 유안진 시인을 초대해 열었던 일파만파 낭독회 포스터

저는 내일 출국합니다. 미국에서 열리는 문학캠프에 초청받아 일주일 후에 귀국합니다. 책방을 열어두어도 코로나19로 거의 폐업 상태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쉬어가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도망가자’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한밤의 책방입니다. “도망가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아무 생각 말자”라는 가사에 피식 웃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자주 부르던 노래의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라는 부분이 떠오릅니다. 저도 조금 더 유연하고 강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 되어 돌아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글·사진/김이듬 책방이듬 대표

책방이듬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성저로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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