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양경언의 시동걸기
유현아 지음 l 창비교육(2020) 고등학생 시절,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여학생은 운동화를 신을 수 없었다. 왜 남학생들처럼 운동화와 구두를 함께 신을 수 없는지 묻는 여학생들에게 당시 학생주임 선생님은 ‘외국의 전통 있는 학교를 보라, 그곳 여학생들은 구두만 신는다’라는 납득되지 않는 답변을 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남학생과 다르게 여학생은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는 운동화를 따로 들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구두에 ‘어울리는’ 생활에 애써 제 몸을 맞추느라 운동장과도 서서히 멀어져야 했다. 여대로 진학한 이후가 되어서야 나는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축구를 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이 20여 년 전 일이라 최근에는 학교가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모르나, 부디 여러 학교 현장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를 바란다. 아니, 반드시 달라져 있어야 한다. 이는 신발이나 운동장 사용 자체를 넘어서서 여성 청소년이 자신의 몸과 삶의 터를 주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온갖 생활의 통제가, ‘아름다움’을 운운하는 미디어가, 심지어는 정치권이, 사회적인 제약이, 여성이 주눅 들기를 강요한다. 어떤 이에겐 자연스레 형성될 자율성에 대한 감각이, 생활이 일일이 관리되고 통제되는 어떤 이에겐 노력해서 가꿔야만 획득할 수 있는 감각이 되는 것이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 ‘정상적인 몸’의 기준을 따로 두는 사회에서 이런 일은 내내 벌어진다. 도쿄올림픽에서 활약하는 여성 선수들 덕분에 힘이 나는 요즘이다. 다종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맘껏 움직이는 여성 선수들의 모습은 통제되고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마음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상대편을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선수들을 보면서 내게 그간 가해졌던 사회적인 제약을 넘어서서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깔깔 웃는 내 얼굴에도 가끔 주눅이 붙어요/ 자세히 보면 교복에도 얼룩처럼 붙어 있죠// 거울 속 그림자처럼 나만 볼 수 있다면/ 주눅 같은 건 없다고 거짓말 칠 수 있는데/ 나만 빼고 다 보이나 봐요/ 어깨 가슴 쫙 펴고 다니라고/ 교복 신경 쓰지 말라고/ 땅바닥 보지 말고 정면만 보라고/ 말해주는 내 친구 등에도 주눅이 붙어 있죠// 학원 가는 길 신호등 옆/ 빨간 등이 켜질 때를 기다리며 내 친구는/ 가끔 이런 고함을 지르죠/ 흥,칫,뿡/ 친구 등짝을 후려치면/ 주눅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해요/(중략)/ 지금 친구와 나는/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유현아,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부분) ‘나’와 친구는 주눅을 “사라지”도록 만드는 일에 좀처럼 지치지 않고 도리어 “방법을 연구”한다. 주눅 같은 건 ‘내’가 뭘 잘못해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사회로부터) “날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온갖 눈치를 보게 만들어도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제 삶을 활기차게 꾸려나가는 여성 청소년의 목소리가 시에선 들린다. 이처럼 차별의 내면화를 강요하는 사회가 만드는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고, 움직이는 속에서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혐오 공격에 떳떳하게 “정면”으로 맞서야 할 이유이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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