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 우리 책방은요—숲속작은책방
얼마 전에 책을 출간한 터라 북토크 일정이 잡혀서 제주에 갔다. 코로나로 인해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동네책방에 조촐하게 모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중 절반이 책방을 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심야 술집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는 술을 마시고 책도 읽는 책방이 어떨까 했고, 베이커리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는 젊은 여성은 돌아와 빵과 커피와 책을 파는 책방을 열고 싶다고 했다. 1인 출판을 하고 있는 이는 출판사와 책방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지역을 탐색 중이라고 한다.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2014년, 우리 부부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숲속작은책방을 열고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전국에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작은 동네책방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술 파는 책방, 빵 굽는 책방, 출판사 겸업 책방들도 곳곳에 생겨나 더 이상 이런 사례들이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어떤 곳은 최초 임대 기간이 만료되는 2년 만에 폐업을 하지만, 오늘도 또 어떤 곳에서는 새로운 책방이 문을 연다. 동네책방을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은 결코 좋지 않은데도 책방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남 같지 않은 그들의 고군분투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기쁜 마음이 된다. 아직 이 세상에는 척박한 사막에 꽃을 피우듯 꿈을 꾸고 그 꿈의 지도를 따라 어둔 밤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무너지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이 영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7년 전 우리가 인적 없는 시골에 작은책방의 첫발을 뗐을 때 지인들은 한숨을 쉬었지만 지금 숲속작은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다. 책방이 시골 전원주택이라는 특징을 살려 우리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농가 민박으로 하룻밤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숲속작은책방에서의 이 하룻밤은 단순히 돈으로 사는 잠자리가 아니다. 먼 길을 떠나와 책방에 하룻밤 짐을 푸는 순간 사람들은 도시의 일상과 단절된 자연 속에서 전혀 다른 공기를 맛보고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책에 파묻혀, 잊고 살던 내면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상처받은 삶에 작은 위로가 되어줘서 고마워.”
꿈보다 삶이 먼저인 우리에게 이곳은 때로 절망과 한숨의 공간이지만 손님이 떠나고 난 아침, 청소하러 올라간 다락방에서 만난 이 한 줄이 책방지기 부부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 작은 책방을 연다는 건 세상을 움직이는 최고의 가치가 ‘돈’, 오직 ‘돈’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기보다 오직 나 스스로 삶에 대해 존엄을 지키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신박하고 재미난 신문물 유흥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느릿느릿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그림책과 문학에 탐닉하는 이 충족한 삶. 이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이곳을 찾아주는 독자들과 함께 즐기는 우리들의 일상이 부디 ‘부자 아빠’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우리는 별일 없이 살고 있다.
글·사진 백창화 숲속작은책방 책방지기
숲속작은책방
충북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 미루길 90 미루마을 28호
http://cafe.daum.net/supsokiz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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