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동반자살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일 뿐이다.”
울산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는 최근 어린 자녀와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아이만 숨지고 살아남아 재판에 넘겨진 엄마 2명의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달 29일 살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ㄱ(42)·ㄴ(40)씨에게 각각 징역 4년씩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독 우리 사회에서 이런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돼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이에 기인한 온정적 사회 분위기가 꼽힌다.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에 숨겨진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내야 하며,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그런데도 사건의 발생 원인을 부모의 무능력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런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의 밑바탕에는 아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불신과 자각이 깔려 있다.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정비하고, 무엇이 이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ㄱ씨는 지난 2018년 12월 두살배기 아들과 함께 방에 착화탄을 피운 채 쓰러졌다가 남편에게 발견됐는데, 아들은 이미 숨진 상태였고 자신도 중태에 빠졌다가 사흘만에야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고 언어 장애를 보이는 등 인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후유증을 안게 됐다. 2015년 현 남편과 재혼해 아들을 낳고, 남 부러울 것 없이 사는 듯했으나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부부 간 다툼이 잦아지고, 임신 뒤 생긴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ㄴ씨는 지난해 8월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던 아홉살 된 딸과 함께 다량의 약을 먹었는데, 딸은 숨지고, 자신은 가까스로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딸의 양육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우울증을 앓던 중 남편마저 공황장애 등으로 휴직과 입원 치료를 반복하게 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영 재판장(부장판사)은 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미 심신이 무너지고 피폐해진 두 피고인의 상태를 고려해 양형을 정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집행유예도 고려했으나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엄중한 죗값을 치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취약계층이나 고위험군에 대한 우리 사회 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긴 하지만, 현실적인 구현 문제와 안전망에 대한 불신과 무지 등 여러 문제에 대해 국가·사회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숨진 아이들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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