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모습. 김영동 기자
17일 오전 찾아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는 마을 전체가 폐허였다. 종이처럼 구겨진 승용차, 곳곳에 나뒹구는 흙 묻은 벽돌과 기와 파편들이 외신 사진 속 폭격 맞은 우크라이나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그저께(15일) 새벽이었다. ‘꽝꽝’ 하고 마을 전체가 울리는기라. 깜짝 놀라가 잠을 깼는데, 현관문이 사라지고 없드라. 그라더니 집 안으로 흙탕물이 막 쏟아져 들어오는기라.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담벼락하고 창고가 사라져삣드라. 저기쯤 있던 수로에서 물이 막 억수로 솟구쳐 오르는데, 사방은 칠흑처럼 어둡제, 와, 정말로 무서벘다.” 흙더미에 쓸려 나간 집터를 바라보며 산사태 상황을 설명하던 윤제순(69)씨의 표정에선 이틀 전 공포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84가구 146명이 살던 벌방리에선 지난 15일 새벽 3시쯤 마을 뒷산이 무너져 내려 맨 위쪽에 살던 주민 2명이 실종됐다. 폐허로 변한 마을은 구조당국이 사흘째 굴착기 등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소방관 임아무개씨는 “실종자가 토사에 휩쓸려 내려갔을 가능성도 있어 마을 아래 흐르는 하천에서 탐침봉 등으로 수색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모습. 김영동 기자
17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모습. 김영동 기자
산사태에 실종된 윤아무개(62)씨 아들은 “어제 오후부터 엄마한테 전화하면 연결음이 한번 울리고 끊어진다. 마을 위쪽 집 근처를 한번만 더 수색해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실종된 윤씨는 2년 전 경기도 안양에서 이곳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윤씨보다 4년 앞서 귀농했다는 안춘모(71)씨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집을 빠져나왔는데, 순식간에 물과 흙더미가 밀려왔다고 한다. 흙더미에 쓸려 가던 남편은 나무줄기에 걸려 목숨을 건졌는데, 아주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바르고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벌방리 이장 박우락씨는 “마을 역사가 500년이 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에 찾아간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는 마을 앞 왕복 2차로 도로의 일부 구간 1개 차로가 옆을 흐르는 한천의 거센 물살에 유실된 상태였다. 이곳에선 지난 15일 새벽 3시쯤 차를 타고 가던 주민 2명이 무너진 도로와 함께 한천에 휩쓸리며 실종됐다. 구조대원들이 드론을 띄워 한천 주변을 살피는 가운데, 경찰관들이 천변을 탐침봉으로 훑으며 실종자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불어난 냇물에 아래쪽 흙이 쓸려 나가고 도로에는 아스팔트만 남아 있었던 거 같아. 그 밤에 그게 보이겠나? 그러니 암것두 모르고 지나가다가 한천으로 떨어져 급류에 휘말린 거겠지.” 주민 장용지(82)씨의 설명에 또 다른 마을 주민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 냥반들 몸이 아파가 대구서 요쪽으로 요양 왔다카드라. 온지 두달밖에 안 됐다카던데.”
예천읍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아무개(69)씨 빈소에선 남편 등 유족이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김씨는 효자면 백석리에 살다가 산사태에 희생됐다. 김씨의 여동생은 “구조됐을 때는 언니가 살아 있었다. ‘너무 아프다, 아프다’ 하다가 숨이 끊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폭우로 경북에서는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현재 870여가구 1350여명이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구조당국은 1500여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 등 구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모습. 경북소방본부 제공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