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모습.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그동안 집회·시위 단골 장소였다. 김영동 기자
22일 오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집이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들머리에 대통령경호처와 경남 양산경찰서 명의의 펼침막이 걸렸다. “여기는 경호구역입니다. 교통관리 및 질서유지에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전만 해도 없던 것이다. 마을 곳곳에는 귀에 리시버를 착용한 건장한 남성 1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경호처 직원과 경찰관으로 보였다. 마을 도로 중앙에는 이동식 철제 울타리와 경호구역임을 알리는 선간판도 설치돼 있었다. 문 전 대통령 경호구역 확장·재지정이 가져온 변화였다. 이날부터 문 전 대통령 경호구역은 기존의 자택 울타리에서 반경 300m까지 확장됐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을 들머리에서 경찰관에게 출입을 저지당한 중년 여성이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수 유튜버로 보이는 이 여성은 한참 동안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마을 밖으로 차를 돌렸다. 이런 소란은 오후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오후 1시40분께 방송을 하려던 한 유튜버가 경호처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마을 밖으로 밀려났다. 앞서 아침 8시20분께는 문 전 대통령 집과 가까운 농지에서 개인 방송을 하려던 한 유튜버가 경찰에 의해 마을 밖으로 퇴거 조처됐다고 한다.
2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모습. 집회·시위 단골 장소에는 대통령경호처 직원과 경찰관만 보였다. 김영동 기자
2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들머리 모습. 김영동 기자
평산마을 주민 박아무개씨는 “지금까지 욕설 등 집회·시위 소음에 시달려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인정하겠는데, 이들의 처사는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오늘부터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10일 문 전 대통령 퇴임 뒤 일부 극우단체 회원들은 매일같이 마을에 들어와 확성기를 틀고 욕설 방송을 했다. 얼마 전엔 욕설 시위를 말리는 문 전 대통령 비서실 직원이 흉기(커터칼)로 위협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시위자는 특수협박 혐의로 구속됐다.
5월 말 찾았을 때 방송차량과 1인시위자들이 점령하고 있던 마을 안 도로는 한산했다. 문 전 대통령 집에서 직선거리로 80m가량 떨어진 이곳은 극우단체 회원 등이 차량 확성기 등으로 문 전 대통령 비방 집회를 해온 곳이다. 이날은 경호처 직원과 경찰관들만 눈에 띄었다. ‘욕설·폭언을 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하면 밖으로 이동 조처된다’는 안내판도 보였다.
“오늘은 정말 조용하네요. 매미 소리, 새소리 말고는 안 들려요.”
2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회관 모습. 김영동 기자
마을을 산책하던 도예가 신한균(62)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소음 피해에서 벗어나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주민 김아무개씨는 “경호 범위가 넓어져 주민 불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하는 분위기다. 소음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시끄러운 확성기 시위는 사라졌지만 유튜버들은 여전히 마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문 전 대통령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로 한쪽에 설치된 파라솔 아래에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중계 중인 유튜버가 보였다. 경호구역 안이라도 법적 요건을 충족해 허가받은 집회·시위는 할 수 있다.
양산경찰서 관계자는 “검문검색이 다소 강화됐다. 신고한 집회·시위는 기존처럼 관리할 방침”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쪽 관계자는 “경호 강화 조처에 따른 엄정한 법 집행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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