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9일 오후 3시 불이 난 대구시 수성구 건물을 합동 감식하고 있다. 대구소방본부 제공
대구 수성구 법원 근처 5층 건물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7명이 숨졌다.
9일 대구소방본부와 대구경찰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수성구 범어동 5층 건물 2층에서 불이 난 시각은 이날 오전 10시55분께다. 소방당국은 연기가 나고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20분 만인 11시17분께 화재를 모두 진화했다.
화재 발생 시점부터 최종 진화까지 짧은 시간이 흘렀으나 인명 피해는 컸다. 7명이 사망하고 3명은 부상(열상)을 입었다. 연기를 흡입해 호흡 곤란을 호소한 사람도 47명에 이른다.
당국은 방화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사망자 중 1명인 50대 남성 ㄱ씨를 방화 용의자로 경찰은 판단했다. 나머지 사망자 6명은 발화가 있었던 사무실의 변호사와 직원들이다. 직원 5명 중 2명은 사망한 변호사의 친인척으로 파악됐다. 정현욱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은 “시시티브이(CCTV)를 보면 용의자가 집에서부터 어떤 통에 든 물건을 두 손으로 안고 나오는 모습이 포착돼 방화로 (화재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용의자 단독 범행으로 보인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조사를 통해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ㄱ씨가 방화를 한 정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불이 난 사무실에는 ㄱ씨 사건의 상대방을 대리한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해당 사무실로 ㄱ씨가 여러 차례 불만 섞인 전화를 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을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화재 당일에는 출장 중이어서 사고는 피했다. ㄱ씨 관련 사건의 판결문 등을 보면, 그는 아파트 재개발 관련 투자 관련 송사에 얽혀 있었다. 1심 패소 뒤 항소를 했고 오는 16일 변론이 잡혀 있던 터였다. 화재 당시 건물 4층에 있다 피신한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한겨레>와 만나 “용의자는 돈을 받지 못해서 상대방 변호사에게 찾아와 해코지를 한 것이다. 이번 용의자가 굉장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에 7명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던 배경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한 층에 사무실 6개(200~5호)가 얇은 패널을 사이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을 정도로 밀집된 구조인데다 해당 층 가장 안쪽에 방화 장소로 추정되는 사무실(203호)이 자리잡고 있었던 점이 인명 사고를 키운 배경으로 거론된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203호에서 붙은 불이 2층 전체로 빠르게 번질 수 있었고 사망자가 나온 203호 직원들의 대피도 쉽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건물은 소방 규제상 지상층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건물에서 대피한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과 화재 현장에 몰려든 인근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화재와 인명 사고 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2층 201호에서 근무한다는 한 직원은 <한겨레>와 만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리고 폭발음과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바로 직원들과 뛰어나왔다”며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으니 뜨거워서 몸으로 (문을) 밀고 나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저보다 몇 초 뒤에 내려온 직원들은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서 벽을 짚고 나왔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5층에서 대피한 또 다른 변호사 사무실 직원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 고함이 들렸다. 예민한 상담자분이 오셨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화재경보가 울려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이미 5층까지 연기가 올라온 상태라서 아래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대원들이 온 뒤에야 5층 비상구를 통해 건물 외벽 비상계단을 이용해 대피했다고 했다.
당국은 오후 3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수사전담팀을 꾸려 화재 원인에 대해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