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경남 남해소방서 119구급대 구급차의 블랙박스 카메라에 찍힌 장면. 아버지 ㄷ씨가 딸을 안고 119구급차로 가고 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올해 들어 처음으로 가는 현장체험학습을 앞두고 들떠있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현장체험학습 하루 전날 밤 의붓어머니에게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아 숨졌다. 경찰은 가해자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입건했는데, 아동학대살해 혐의 적용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여청범죄수사대는 23일 의붓딸 ㄱ(13)양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어머니 ㄴ(40)씨를 긴급체포했다. ㄴ씨는 지난 22일 저녁 8시께 경남 남해군 자신의 집에서 ㄱ양의 온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소방·학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양 가족은 아버지 ㄷ(45)씨와 ㄴ씨, 두명의 남동생 등 다섯명이다. ㄴ·ㄷ씨 부부는 올해 초부터 별거 상태로, ㄱ양과 두 동생은 ㄴ씨와 살고 있었다.
ㄱ양은 22일 밤 9시께부터 1시간 가까이 집에서 ㄴ씨에게 온몸을 두들겨 맞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ㄴ씨는 이날 자정께 별거 중인 ㄷ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상태가 이상하다”고 알렸다. 집에 찾아온 ㄷ씨는 23일 새벽 119에 “아이가 심정지 상태이고, 배에 복수가 차고 있다”고 신고했다. ㄱ양은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지만 숨졌다.
경남경찰청 여청범죄수사대는 “ㄱ양의 온몸에서 멍 자국이 확인됐는데, ㄱ양 주검을 확인한 의료진은 외부요인에 의해 사망한 ‘외인사’라고 판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어머니 ㄴ씨로부터 ‘아이를 밀어서 넘어뜨리고, 발로 차고 밟았다. 앞서 저녁에 별거한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하며 아이 양육 문제 등으로 다퉜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일단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ㄴ씨에게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또 “정확한 사망원인과 사망시각 등을 확인하기 위해 ㄱ양의 주검을 부검할 예정이다. 이웃주민들과 ㄱ양 집 주변 폐회로텔레비전 등도 조사하고 있다. ㄱ양의 두 동생은 현재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보호하고 있는데, ㄱ양이 숨질 당시 두 어린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들도 부모에게 아동학대를 당했는지 등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ㄴ·ㄷ씨 부부는 지난해부터 불화를 겪었고, 결국 올해 초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ㄴ씨는 지난해 부부싸움 도중 경찰에 신고했고, 올해 초엔 “별거 중인 남편이 집에 찾아왔다”며 신고했다. 지난봄엔 ㄱ양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신고 몇시간 뒤 아파트 옥상에서 ㄱ양을 찾았다. 경찰은 당시 ㄱ양이 아파트 옥상에 있었던 이유와 아동학대 관련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ㄱ양이 다니는 학교는 충격에 빠졌다. 학교 관계자는 “ㄱ양은 22일 정상 출석해 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30분 하교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줄곧 통제된 생활을 하던 1학년생들이 23일 올해 첫 현장체험학습을 간다는 소식에 매우 들떠 있었고, ㄱ양도 그랬던 것으로 안다. 학생들이 아직은 ㄱ양의 안타까운 일을 모르고 있는데, 학생들이 큰 충격을 받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한겨레 영남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