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정비사업이 예정된 제주 천미천에 있는 소. 허호준 기자
12일 오후 제주시와 표선면을 잇는 번영로의 대천동 사거리 대비공원 인근에서는 타운하우스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옆 좁은 길에 들어서자 하늘색 산수국이 고개를 내밀었고,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 옆 오른쪽 천미천으로 다가가자 제주에서는 드물게 넓은 소(沼·물웅덩이)가 보였다. 비 온 뒤의 천미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빗물이 소에 넘쳐 흘러내리고, 하천 양쪽은 녹색 초목으로 뒤덮여 산수화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볼 날도 머지않다. 곧 하천 정비공사가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아무개(43)씨는 “처음 찾아왔는데 이런 비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곳에 제방을 쌓게 되면 비경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천미천은 길이 25.7㎞에 이르는 제주도내 143개 하천 가운데 가장 긴 하천이다. 한라산 해발 1100m 부근에서 발원해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경을 굽이쳐 흐르다가 서귀포시 표선면 신천리 바닷가로 연결된다. 이날 표선면 성읍리 영주산을 끼고 천미천을 따라 들어가자 홍수를 막고 농업용수로 쓰려고 건설한 도내 최대 규모(125만t) 성읍 저수지가 나타났다. 이 저수지는 13년간 공사 끝에 2016년 말 완공됐다. 거대한 호수 같은 저수지에는 물이 차 있고, 주변에는 저류지 공사를 위해 포클레인이 움직이고 있었다.
제주도는 홍수 피해 예방 등을 이유로 천미천 하천 정비공사를 벌이고 있다. 사업비 210억원이 들어가는 천미천 구좌지구(조천~구좌) 5.72㎞ 구간 공사는 2018년 7월 시작돼 내년 5월까지 진행된다. 또 2017년 착수한 표선지구(성읍~신천) 8.6㎞ 구간 공사는 사업비 260억원을 들여 오는 2024년 끝낸다. 올해 말까지 토지 보상이 끝나면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2개 지구의 하천 정비 공사에만 470억여원이 들어가는 대형공사다.
하천 정비사업이 예정된 제주 천미천에 있는 소. 허호준 기자
그러나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제주도가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제주 특유의 건천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단체가 지난 3월 행정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2016년부터 하천 정비 공사가 계획되거나 공사 중인 도내 하천은 29곳에 68.64㎞에 이르렀다. 공사비만 3357억5500만원이었다.
제주에는 다른 지방과 달리 물이 흐르는 ‘강’이 없다. 제주의 지질 특성상 빗물은 주로 하천이 아닌 지하로 흘러들어 가고, 비가 많이 내릴 때만 흐르는 ‘건천’이 대부분이다. 화산섬 제주의 하천은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소와 하천변의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특징이다.
천미천의 하류 부분은 홍수 피해 예방 등을 이유로 1990년대부터 정비가 이뤄져 어른 키보다 큰 제방이 하천변에 건설됐고, 하상(하천 바닥) 평탄화도 이뤄졌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은 “제주의 하천은 생태 경관적 가치가 크다. 천미천은 도내 하천 중 가장 많이 정비사업이 이뤄졌고 원형훼손도 심각하다. 천미천 정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성읍저수지 주변에 또 대형 저류지를 짓고 있는 데 예산 낭비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천미천 표선지구 예정지에 쌓여있는 제방. 제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이 단체는 “공사의 명분인 홍수 피해 근거를 제시하고, 피해 예방을 종합 판단해 하천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전의 방식을 통한 계획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과도하게 부풀린 홍수 피해를 근거로 진행하는 제주도내 하천 정비공사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도쪽은 자연 친화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 관계자는 “하천 정비사업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예방하기 이뤄지는 것이다. 국토부의 지침에 따라 2008년부터 하천 바닥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제방 공사의 경우 육지는 콘크리트로 하지만, 제주에서는 석축 쌓기를 자연석으로 한다. 자연 친화적이다”고 말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하천 바닥과 양안의 암반을 포클레인으로 부숴버리고 암석을 깔아놓는 것이 친환경적이고 생태하천인가”라며 “제주에서 하천 바닥과 하천 양쪽 벽을 구성하는 용암류와 하상 퇴적층은 연구가치가 높은 화산 지질학적 자원이다. 중장비를 동원해 이를 부숴버리면 수만 년 동안의 자연적인 풍화침식 조각품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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