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이 반발하면서 영리병원 개설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9일 “박근혜 정부, 원희룡 전 지사가 추진하고 문재인 정부가 ‘영리병원 설립 금지’ 공약을 어기면서 방조한 영리병원 설립에 광주고법이 정당성을 부여했다. 영리병원 정당화 판결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규탄했다. 이 단체는 “영리병원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응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영리병원 확산을 초래해 감염병 대응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도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책임은 원 전 지사에게 있다. 원 전 지사는 영리병원 조건부 허가 당일인 2018년 12월5일 ‘병원 허가와 관련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녹지병원 설립 저지 투쟁을 예고했다.
앞서 광주고법 제주 제1행정부(재판장 왕정옥)는 지난 18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개설허가 취소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제주지역의 영리병원 설립 논란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지병원 쪽은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외국의료기관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2017년 7월 제주도의 사용 승인을 받고 같은 해 10월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제주도는 전국 보건의료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2018년 공론조사를 해 ‘개설 불허’를 권고했지만, 당시 원희룡 지사는 2018년 12월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도는 2019년 2월15일 녹지병원 쪽에 개설허가를 한 날로부터 의료법상 3개월 이내에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통보한 데 이어 2월26일 녹지 쪽에 “2월27일 사업계획 승인사항 등 운영과 관련해 현지점검을 하겠다”고 통보하고 녹지 쪽의 점검 연기 요청에도 곧바로 점검에 들어갔으며, 3월5일에도 현지점검에 나섰다. 그러나 녹지병원 쪽이 응하지 않자 관련 절차를 밟은 뒤 4월17일 허가를 취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제주도가 녹지병원의 행정절차 연기 요청을 거부하는 등 개원 준비계획을 다시 수립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또 현지점검은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라 조사 개시 7일 전까지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데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무원의 업무를 기피하거나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제주도와 녹지병원 쪽의 움직임을 보면 애초부터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내국인의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쪽으로 추진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내국인 진료 제한’에 대한 법적 다툼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녹지 쪽은 이번 소송과는 별개로 2018년 12월 제주도의 조건부 개설허가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도 제기한 상태이다.
도는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는 판결문을 분석한 뒤 소송대리인 및 법무 담당 부서와 협의해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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