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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버지가 반역자로 몰리니 가족들 평생 고통”

등록 2020-11-03 04:59수정 2020-11-03 09:02

장재성 아들 상백씨
“서훈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래도 법이 바뀌리라는 희망”
1943년 찍은 장재성 선생과 부인 박옥희씨, 큰아들 상백씨(당시 11개월, 붉은 원)의 가족사진과 상백씨의 현재 모습. 장재성기념사업회, 본인 제공
1943년 찍은 장재성 선생과 부인 박옥희씨, 큰아들 상백씨(당시 11개월, 붉은 원)의 가족사진과 상백씨의 현재 모습. 장재성기념사업회, 본인 제공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정부에서 바라보는 아버지는 여전히 반역자입니다. 한평생 고통받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공식적인 자리에 서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장상백(78)씨 목소리에서는 체념이 느껴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인 아버지 장재성(1908∼1950) 선생이 1950년 한국전쟁 때 희생된 뒤 평생 좌익 가족으로 몰려 탄압과 감시를 받아온 7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장 선생은 1929년 여학생 희롱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간 싸움이 일어나자 한국인 학생에게 ‘식민지 교육 철폐’ 등을 요구하도록 해 일제 항거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1남1녀 중 장남인 장씨는 매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11월3일)이 다가올 때마다 기념식에 초청받고 언론의 숱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해왔다.

장씨는 “우리 식구들에게 아버지 이야기는 금기다. 1962년 아버지가 독립운동유공자 서훈을 받게 되며 가족들이 각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곧바로 좌익 혐의 때문에 서훈이 취소돼 후유증이 심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들에게도 서훈을 추진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말을 믿고 2018년 재신청을 했지만 같은 이유로 보류당해 또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가 반역자로 몰리니 가족들도 떳떳하게 나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장씨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살 때인 1949년 광주형무소에서였다. 광복 뒤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 대표 등을 맡았던 장 선생은 1948년 8월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려 황해도 해주를 다녀온 게 문제 돼 1949년 4월 서울에서 붙잡혀 7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있었다.

장씨는 “그땐 어렸으니까 아버지가 왜 형무소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랜만에 뵈니 마냥 반가웠다. 아버지와 야구를 같이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장 선생이 총살당하며 가족에게 고통이 시작된다. 장씨는 2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박옥희씨가 비참한 인생이었다고 토로했다. 장씨는 “어머니는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큰오빠, 남동생 2명을 잃었다. 억척스러웠던 할머니(고 최예언) 덕에 아버지, 고모(장매성)와 함께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어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교직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4·19, 5·16 땐 경찰에 붙잡혀 하룻밤씩 조사를 받고 오시는 등 평생 사찰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씨와 여동생 봉진씨 또한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장씨는 전남 강진에서 목장 등을 운영하다 10년 전부터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큰아들 윤영씨 집에 거주하고 있다. 윤영씨와 둘째 아들 헌영씨는 지난달 30일 광주제일고등학교(옛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진행된 장재성 흉상 제막식에 참석해 주목받았다. 장씨와 헌영씨 또한 광주일고를 졸업해 장재성 선생의 일가는 3대가 동문이기도 하다.

장씨는 “기념사업회에서 연락이 와서 아들들이 간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나와 내 동생은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나는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 아버지의 서훈이 불가능하다고 여기지만 아들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다. 그래도 법이 바뀌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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