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농민들이 침수피해로 열매를 맺지 않은 콩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정부 말만 듣고 논에다 콩을 심었제. 근디 이번 폭우로 피해가 말이 아니여.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안 내놓고, 이상기후 역시 계속될 텐데, 앞으로 누가 콩을 또 심을라고 하겄소?”
22일 오전 전남 보성군 득량면 삼정리에서 만난 농민 김선근(55)씨는 3600㎡(약 1100평) 밭에 심었던 콩을 트랙터로 갈아엎은 뒤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이날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과 보성군농민회가 주관한 논콩 갈아엎기 투쟁에 자신의 밭을 내어줬다.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논 타작물 재배지원 시범사업’(쌀 생산 조정제)을 시행하자 김씨는 24㏊ 논을 밭으로 바꿔 콩을 심었다. 이 사업은 2020년 종료됐지만 올해부터 콩, 밀, 조사료 등을 논에 심으면 1㏊당 최대 480만원을 지원하는 ‘전략작물 직불제’로 이름을 바꿔 다시 시행하고 있다. 농림부는 올해 4월 말 기준 전국에서 논콩 1만9500㏊를 신청받았다. 지난해 논콩 재배 면적(1만2590㏊)보다 54.8%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올해 6~7월 집중호우 때 논콩 재배지는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5700여㏊가 침수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논콩밭도 물에 잠겨 현재 열매를 맺는 시기지만 꽃조차 피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김씨의 밭에 모인 농민들은 국가가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라고 장려해놓고 정작 피해가 발생하자 보상과 대책은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했어도 매출의 80% 수준만 보상받아 생산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주전남연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의 정책 실패로 발생한 논콩 침수피해액 전액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며 “기후위기와 자연재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회는 농업재해 보상법을 서둘러 제정해 농민의 생존권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이날 보성 등 전남 4곳에 이어 오는 24일에는 안동 고추밭, 28일 충남 4곳 등에서 논밭 갈아엎기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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