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동지회 집행부 25명이 1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제공
“떳떳하다면 왜, ‘도둑참배’를 하는 거예요?”
19일 오전 광주시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앞에 모인 5·18유공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국립5·18민주묘지를 ‘기습참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애초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는 이날 오전 11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화해 선언식’을 한 뒤, 오후 2시30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특전사동지회 집행부 25명은 이날 오전 9시55분께 국립5·18민주묘지 주차장에 예고없이 도착했다. 이들은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쪽에 “참배하러 왔다”“고 밝혔다. 5·18부상자회는 이날 오전 9시17분께 5·18관리사무소 쪽과 통화하면서도 이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김범태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장이 특전사동지회 회원 30여명이 맞았다. 김 소장은 1980년 5월21일 고 전옥주씨와 함께 시민대표로 장형태 전남지사와 협상을 했던 5·18유공자다.
19일 광주시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앞에서 오월단체 회원들이 공동선언식을 두고 찬반으로 갈려 말싸움을 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특전사동지회 집행부는 5·18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제복 차림으로 집단 참배했다. 김 소장은 “검은 베레모를 쓰고 정복을 입은 채 군홧발로 가면 여기 누워계신 영령들이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제복을 벗어달라고는 못하겠지만, 검은색 베레모는 쓰지 말 것을 5·18 당사자로서 정중하게 요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검은색 베레모를 모두 벗고 인사, 묵념, 헌화, 분향 순서로 참배한 뒤, 참배단 위에 있는 묘지를 둘러보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날 기습참배는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참배 후 대국민 공동선언식이 예정된 5·18기념문화센터로 이동했다.
5·18기념문화센터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광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은 5·18기념문화센터 앞에서 ‘피 묻은 군홧발로 5·18을 짓밟지 말라’, ‘가해자 사과없는 피해자의 용서 웬말이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문 앞을 지켰다. 이들은 군복을 입은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행사장에 들어서자 몸을 날려 달려들었고, 이를 제지하던 경찰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5·18유공자들 사이에도 갈등이 빚어졌다. 대국민 선언식에 반대하는 5·18민중항쟁기동타격대 회원 등은 ‘진행요원’을 하던 5·18부상자회 회원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따지다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19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앞에서 유족회 어머니 등이 5·18 2개 공법단체가 추진하는 `화해 공동 선언식'에 반대하는집회에 참석했다. 정대하 기자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특전사동지회와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강행했다. 주최 쪽 관계자들의 인사말에 이어, 박민식 보훈처장의 인사말(대독)이 나왔다. 5·18 첫 희생자 고 김경철씨의 어머니 임금단씨는 참석하지 않아 그의 자리는 빈 의자로 남아 있었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 특전사전우회는 대국민 공동선언 조인식을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5·18기념문화센터 안에서 공동선언식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 경찰은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 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가 19이 오전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포용과 화해와 감사’라는 주제로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포용, 계엄군과의 화해, 5월 영령에게 감사한다는 의미를 담아 열렸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와 황일봉 부장자회장, 정성국 공로자회장, 전상부 특전사동지회 회장이 공동선언문에 사인을 마친 뒤 선언문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날 발표된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문’은 “진압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 등을 상부 명령에 복종이 불가피했고 아픔을 겪어왔다”고 밝혔다. 선언문엔 시민군과 진압군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겨 논란을 예고했다. 양쪽 단체는 행동강령에 계엄군 장병들에 대한 법적·제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날 참석한 특전사동지회 회원 170여명 가운데 5·18 현장 투입자는 3~5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군 기동타격대원이었던 김공휴(62)씨는 “화해 선언식을 통해 물꼬를 트면 5·18 진압군이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일기나 기록 등을 끌어내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9일 오후 2시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유공자화 시민단체 회원들이 `특전사동지회와의 화해 공동 선언식'을 규탄하고 있다. 이지현씨 제공
행사장 밖에선 영하의 날씨 속에 5·18유족회 어머니 등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5·18 3개 공법단체 가운데 유족회는 공동 선언식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숙고 끝에 빠졌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 108개 시민단체는 “용서와 화해를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실한 자기 고백과 자기반성”이라고 지적했다.
5·18유공자 최형호(66)씨는 “진실을 고백하면 공수부대원들도 누구든지 받아줄 수 있는데, 그것을 안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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