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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뒤 반려자 만났다…‘2062명 승규씨’의 완전 자립을 위하여

등록 2022-12-01 10:00수정 2022-12-01 12:56

시설 벗어나 세상 속으로 …2009년 이후 2천여명
보건복지부, 올 7월부터 10곳 시범사업
탈시설 지원법·예산 등 관련 법안 제정 절실
광주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승규씨와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준비하던 김은정씨가 지난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실로암 사람들 제공
광주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승규씨와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준비하던 김은정씨가 지난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실로암 사람들 제공

최승규(53)씨는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2019년 개봉)에 나온 주인공의 실존 모델이다. 최씨는 집 안에서도 앉거나 누워서 다리를 조금씩 움직여 이동해야 하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이다. 2017년 11월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왔다. 최장 2년까지 머물 수 있는 자립생활주택에서 지냈던 그는 2019년 2월 12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완전 자립’이란 꿈을 이룬 것이다.

그에게서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 왔다. 연애사와 결혼 과정이 궁금해 그를 잘 아는 김용목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대표는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지내온 최씨와 2년 전 센터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해 홀로서기를 준비하던 신부 김은정(43)씨가 사랑을 키웠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지적장애인인 신부의 요청으로 여러해 동안 ‘아버지’ 구실을 하고 있다.

시설에서 나와 광주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하는 최승규씨와 김은정씨가 지난 10일 결혼했다. 실로암 사람들 제공
시설에서 나와 광주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하는 최승규씨와 김은정씨가 지난 10일 결혼했다. 실로암 사람들 제공

지난 10일 오후 2시 광주 신원벧엘교회 2층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동료와 가족 등 축하객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맨 최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식장에 들어섰다. 아이디어가 많은 그는 전동 휠체어에 센서를 달아 아래턱으로 조작하는 방안을 스스로 고안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꽃을 든 신부가 신랑 곁에서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최씨는 “다른 동료 장애인들이 부러워한다. 결혼식 때 많이 떨렸고 설렜다. 외롭게 살다가 반려자를 만나 든든하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에 도전한 장애인들은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장애인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었다. <한겨레>가 전국 17곳 시·도에 일일이 문의한 결과, 탈시설 장애인 자립정착금을 지원받거나 탈시설 자립에 성공한 장애인은 2062명(2022년 6월 기준)이었다.

서울시가 2009년부터 지난 6월까지 집계한 탈시설 장애인 수는 1242명이다. 나머지 16곳 시·도는 탈시설 자립정착금 지원 건수를 통해 탈시설 장애인 규모를 추산하고 있었는데, 지역별 편차가 컸다. 울산시는 1명에 불과했고, 충남도와 세종시는 아예 1명도 없었다.

탈시설 장애인 지원 정책은 정부보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서 시작했다. 서울에선 지난 7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에 탈시설 장애인 지원 조항을 넣어 탈시설 지원 정책을 추진하는 여타 지자체에 견줘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서울시는 복지정책실 산하에 장애인탈시설팀도 두고 있다.

장애인 탈시설 추진 종합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지자체도 여럿이다. 서울시는 1차 연도(2013~2017년)에 이어 2차 연도(2018~2022년) 계획을 세웠다. 자립생활 공간 제공, 퇴소자 정착금 지원, 탈시설 체험 전용 주택 운영 등의 방안이 담겨 있다. 대구시, 광주시, 인천시, 부산시, 충남도 등도 장애인 탈시설 추진 종합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영화 &lt;버스를 타자&gt; 감상 백일장’에서 ‘저상버스 타고 고향 가자’라는 개사곡을 불러 최고상을 받은 피용헌씨. 심요한 활동가 제공
지난 4월 ‘영화 <버스를 타자> 감상 백일장’에서 ‘저상버스 타고 고향 가자’라는 개사곡을 불러 최고상을 받은 피용헌씨. 심요한 활동가 제공

지적장애인 피용헌(38·서울시 성북구)씨는 자치단체의 탈시설 정책 도움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례다. 두살 무렵부터 시설에서 생활했던 그는 “시설을 나가 살게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서 여는 명상 치유 교육을 받으며 탈시설을 꿈꾸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어떤 것인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조금씩 배웠어요.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2015년 11월 용기를 내 거주시설에서 나와 서울 성북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입주했다.

피씨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야기 조각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글쓰기 재주를 발견했다. 피씨는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썼고, 음악인들이 그 글을 다듬어 곡을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 주최로 열린 ‘영화 <버스를 타자> 감상 백일장’에서 산울림 노래를 ‘저상버스 타고 고향 가자’로 개사해 불러 ‘비마이너상’을 받았다. 지난 6월 돈을 모아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사한 피씨는 서울 중구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다. “너무 좋아요. 노래도 부르고 가사도 쓰고 하고 싶었던 연극도 하거든요.”

시설 장애인들에게 시설 밖은 여전히 두려운 곳이다.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는 2만9086명(2020년)이고, 평균 거주기간은 18.9년이다. 사람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다 돌봐주는데 왜 나오려고 할까?’라고 의아해한다. 탈시설의 가장 큰 장벽은 가족이다. 일부 장애인 학부모 단체는 “장애 정도가 심해 자립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미국·캐나다 등에선 1960년대부터 탈시설 자립 정책으로 전환했다. 김기룡 중부대 교수(특수교육학)는 “신체의 자유와 이동을 제한하는 시설 중심 장애인 정책을 바꿔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돌봄·의료지원 정책을 마련해 지역사회로 주거전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탈시설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건복지부가 2009년 9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시설 거주 장애인 2만4214명(단기·그룹홈 제외)을 대상으로 자립 의사를 조사한 결과, 의사 표현 가능자의 33.5%(약 2천명)가 찬성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장애인의 주거 선택 권리 보장 등의 내용이 포함된 탈시설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피플퍼스트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준) 등 장애인단체는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국피플퍼스트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준) 등 장애인단체는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시설 탈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로드맵에 따라 올해 7월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시와 충남 서산, 경북 경주, 전북 전주, 전남 화순, 제주시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했거나 시행한다. 지역별 20명씩 모두 200명의 장애인을 탈시설화하는 게 목표다. 고광현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은 “탈시설 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장애인들에게 적합한 주택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정부 시범사업 참여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연계한 주택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범사업도 재정여건 등에 따라 지역별 편차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립생활·지원주택에서 탈시설 지원 인력(코디네이터)을 장애인 4명당 1명씩 배치하도록 권고했지만, 서울시와 대구시는 장애인 2명당 코디네이터 1명을 두고 있다. 대구시 쪽은 “코디네이터 인력의 처우가 워낙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주시설 입소자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중증 발달장애인 맞춤형 지원방안도 절실하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활동지원사 지원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종합조사표 문항을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해 개선해야 한다”며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통합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0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삭발식 및 결의대회에서 삭발하던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4월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인근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등 500여명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삭발식 및 결의대회에서 삭발하던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는 2025년부터 매년 740여명을 지역사회에 정착시켜 2041년까지 탈시설화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런 계획이 흐지부지되지 않으려면 법적 기반을 갖춰 관련 예산이 뒷받침되도록 해야 한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 계류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안, 탈시설지원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협조로 시범사업 대상 자치단체의 주택은 모두 마련됐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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