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만명 이상 중견도시들을 특례시로 지정해 행정·재정상 자율성을 높여주려는 방안을 두고, 인구 50만명 이하 작은 도시들이 ‘부자 도시 살찌우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여당 소속 경기도 시장·군수들이 특례시 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 당의 만류로 일단 보류했다.
곽상욱 더불어민주당 전국기초자치단체장협의회 회장(오산시장) 등 여당 소속 경기도 시장·군수 9명은 5일 오산시청에서 ‘지방소멸 가속하는 특례시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려다 전격 보류했다. 경기도 인구 50만명 미만 21개 시·군 가운데 16곳이 회견에 동의했고, 의정부·오산·이천·구리·의왕·여주·동두천시장과 양평군·연천군수는 회견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다. 한 관계자는 “인구 100만명 넘는 수원시 등 민주당 출신 시장들이 특례시 논의를 주도해온 상황에서 소규모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당에서 내부 분열로 비칠까 우려해 사전 의견청취를 이유로 만남을 요청해 회견이 보류됐다”고 전했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를 ‘특별지방자치단체’(특례시)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기존에는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의 경우 행정, 재정 운영 및 국가의 지도·감독에 대해 특례를 둘 수 있다고 할 뿐 따로 특례시 설치 근거는 없었다. 현재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인구 50만명 이상인 곳은 수원시 등 전국 16곳이고,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들은 기존 명칭을 유지하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사이 지위인 특례시로 분류된다.
문제는 특례시에 재정상 ‘특례’를 주기 위해서는 인구 50만명 미만 소도시나 군이 가져가던 몫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광역자치단체에서 걷던 세목 가운데 일부가 특례시로 넘어가면, 궁극적으로 소규모 시·군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얘기다. 실제 도세 가운데서도 비중이 가장 큰 취득세를 전액 특례시에 주도록 지방재정법을 개정하자는 의견 등이 나왔다고 한다.
경기연구원이 별도의 특례시세를 신설하지 않고 도세인 취득세를 특례시세로 전환할 경우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경기도 내 10개 특례시는 세수가 3조1512억원 늘어나지만 나머지 21개 시·군은 7040억원, 경기도는 2조4472억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특례시는 인구가 많고 재정여건이 좋은 대도시만을 위한 법”이라며 “모든 자치단체를 특례시와 비특례시로 나누고 열악한 지역 주민은 비특례지역 주민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인데 210개 소규모 자치단체장이 동의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이해관계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는 특례시 제도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치단체 재정이나 자치역량은 생각지 않고 단지 인구 규모로만 특례시로 지정하면 자치단체 덩치 키우기 경쟁 등이 우려되는 만큼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률이 아닌) 자치단체 조례로는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를 못 하도록 한 것은 (지방자치제도와 관련해)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소조항인데도 이번 개정안에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자치권 신장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