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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유충 발견’…왜 인천 수돗물만 유독 말썽일까요

등록 2020-07-17 17:22수정 2020-07-18 15:08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15일 인천시 서구 서부수도사업소 들머리에 ‘수돗물 유충’ 피해 가구에 지원될 병입 수돗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인천시 서구 서부수도사업소 들머리에 ‘수돗물 유충’ 피해 가구에 지원될 병입 수돗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로 홍역을 치렀던 인천에서 이번엔 수돗물에서 벌레 유충이 나왔습니다. 깔따구류의 이 유충은 심지어 살아서 꿈틀거리기까지 합니다. 이번에 유충이 검출된 곳은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로 큰 고통을 겪었던 서구 일대입니다. 서구 주민들은 또다시 수돗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흙탕물, 이물질 등 수돗물과 관련한 민원은 비단 인천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공사 뒤 통수 과정 등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인천 수돗물 유충 검출 이후 경기도 시흥시와 화성시에서도 비슷한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인천의 수돗물만 말썽일까요?

안녕하세요. 전국부 인천지역 기자 이정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수도 관리체계 부실 탓입니다. 지난해 값비싼 교훈을 얻고도 이를 행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지난해 5월30일 서구 공촌정수장 수계 전환 중 기존 관로 수압을 무리하게 높이다 수도관 내부 침전물이 탈락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초동 대처 부실로 정상화되기까지 무려 67일이 걸렸으며, 이 기간 서구 공촌정수장에서 수돗물을 공급받는 26만1000가구(63만5000명)가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관리자들이 수계 전환 지침을 따르지 않았고, 수돗물의 탁도를 측정하는 탁도계를 고의로 끈 사실도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합동점검에 나선 정부는 거의 100% 인재였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리 부실이 불러온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수돗물 관리 실패로 애꿎은 혈세가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적수 사태’로 빚어진 주민들의 생수 구매 비용, 저수조 청소비, 필터 교체비 등 피해 보상비로만 모두 331억7500만원이 들어갔습니다. ‘상수도 혁신’에 나선 인천시는 적수 사태를 교훈 삼아 상수도 관련 기반시설 확충에 열을 올렸습니다. 정수처리시설을 고도화하는 한편, 수질감시체계 강화,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노후관 조기 교체 및 정비 등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수돗물 유충 검출 사태에도 대응은 안일했습니다. 지난 9일 최초 수돗물 유충 신고가 있은 지 닷새가 지난 뒤에야 실태를 파악하고, 후속 대책 등을 내놓았습니다. 외부 유입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직수관을 통해 수돗물을 공급받는 가정에서 잇따라 유충이 발견됐는데도 말이죠. 상수도 시설은 현대화됐지만, 행정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고인물 등에서 종종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의 대응이 문제를 키웠습니다. 인력 전문화 등 본질적인 쇄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유충 발견은 지난해 적수 사태가 남긴 ‘상흔’에서 비롯됐습니다. 적수 사태를 겪은 뒤 서구의 상당수 가정에서 투명한 샤워기 필터로 교체했기 때문입니다. 수돗물 불신이 ‘속 보이는’ 필터 교체로 이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 샤워기 필터에서 유충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9일부터 16일까지 모두 194건의 유충 관련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시가 현장을 점검한 결과, 공촌정수장 물을 공급받는 서구 지역 90곳에서만 실제 유충이 발견됐습니다. 시는 1년 전처럼 다시 관로 이물질 제거 작업, 수돗물 소화전 방류, 배수지 청소 등을 진행 중입니다. 1년 단위로 대대적 청소가 이뤄지는 현실을 꼬집어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수돗물’이라는 비아냥마저 들립니다. 다시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보상 문제도 뒤따를 것입니다.

시는 공촌정수장 내 수돗물을 정수하는 데 쓰이는 ‘활성탄 여과지’에서 유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깊이 2.7m 규모의 저수조 형태에 고순도 탄소 입자로 채워진 활성탄 여과지는 탄소 입자들이 유기물을 흡착해 냄새 물질이나 이물질 등을 제거하는 구실을 합니다. 공촌정수장 여과지는 물론, 여과지를 통과한 물이 이동하는 배수지 8곳 중 2곳에서도 유충이 발견됐습니다. ‘활성탄 여과지’ 자체가 공기 중에 노출돼 있고, 일종의 고운 모래 입자여서 깔따구 유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지난해 적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시가 공사 중이던 공촌정수장 고도처리시설을 계획보다 서둘러 가동하면서 완전히 밀폐하지 않아 벌레가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적수 사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인천시의 조급증이 또 다른 화를 불러온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시와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유역환경청, 국립생물자원관 등이 합동으로 조사에 나선 만큼 조만간 발생 경위와 원인은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수돗물 불신의 상징인 상흔을 거둬낼 수 있을까요? 상수도 관리 행정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은 시설과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도 무용지물입니다.

인천/이정하 전국부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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