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진범 논란’을 일고 있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첫 공판이 19일 오전 열렸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이춘재(57)씨는 증인 채택이 안 돼 법정에 서지 않았지만, 재심 담당 변호사 쪽에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법정에)출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수원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박정제)는 이날 이 사건 재심 첫 공판에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보관 중인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던 체모 2점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체모에 대한 감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체모와 재심청구인 윤아무개(53)씨의 체모를 확보해 다음 기일까지 압수물과 압수 조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후 감정기관을 선정해 두 체모에 대한 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이런 감정 결과는 8차 사건의 진범을 가리는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씨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체모 감정 결과를 통해서 윤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현장 체모조차 바꿔치기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 감정 결과에 따라 현장 체모 조작까지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이춘재는 ‘증인으로 출석해서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법정에)출석하겠다’고 밝혔다”며 “그는 ‘피해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서라도 이것은(진범은)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체모에 대한 압수영장은 발부하면서도 범행을 자백한 이씨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 결정은 보류했다. 다음 재판은 내달 15일 열린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아무개(당시 13살)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이 연쇄살인을 모방해 벌인 강간·살해 사건으로 보고 이듬해 윤씨를 검거했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해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은 모두 이를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씨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편, 이씨의 자백 이후 재수사에 나선 경찰과 검찰은, 당시 부실수사와 증거조작 등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수사 경찰과 검사 등을 입건하는 등 이 사건도 이씨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